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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먹는 요리] ‘글루미 선데이’의 비프 롤

입력 | 2002-02-22 11:50:00


▼아픈 사연 담긴 메뉴 찾아 부다페스트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맛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어묵국물, 중학교 때 분식집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먹던 쫄면….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의 미각은 참 보수적이다. 그래서 오래된 식당에는 몇 십년씩 된 단골들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도 비프 롤이라는 요리를 잊지 못해 50년 만에 부다페스트를 찾은 남자가 나온다. 이제는 사업가로 제법 큰 성공을 거둔 한스는 자신의 80회 생일을 맞아 50년 만에 가족을 데리고 오래 전 단골이었던 자보 레스토랑을 찾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는 그 옛날 자신을 매료시켰던 요리 비프 롤을 주문하고 변함없는 맛에 감격해한다.

한스가 비프 롤을 잊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그가 오래 전 즐겨 다니던 이 레스토랑에는 일로나라는 여인이 있었다. 레스토랑 사장인 자보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한스는 매일같이 자보 레스토랑을 찾아 비프 롤만 주문한다. 그리고 독일로 떠나기 전날 밤 일로나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시련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다뉴브강에서 투신 자살을 기도한다. 그때 한스는 자보에게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날 자보는 삶의 희망을 잃은 한스에게 비프 롤 요리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준다. 소의 연한 허리살을 얇게 잘라 여기에 마늘향과 녹인 버터를 살짝 스며들게 한 뒤 튀기듯 굽고, 속은 얇은 햄 치즈로 채우면 그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비프 롤을 매개로 손님과 주인이 아닌 남자 대 남자, 친구관계가 되지만 이들의 우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장교가 된 한스가 일로나를 차지하기 위해 유대인인 자보를 수용소로 보내며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한스는 자신의 80회 생일날 자보 레스토랑에서 ‘글루미 선데이’ 연주를 들으며 비프 롤을 먹다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는 운명을 맞게 된다.

< 백승국/ ‘극장에서 퐁듀 먹기’의 저자 > baikseungkook@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