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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월주 스님 “탐욕과 과격함이 한 나라의 멸망 자초”

입력 | 2002-01-24 11:24:00


견훤과 후백제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것은 상생(相生)이 아닌, 서로 죽이는 상극(相剋)의 정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견훤이 장남 신검에 의해 유폐됐던 전북 김제 금산사의 최고 어른인 월주 회주(會主)스님은 “견훤 부자의 탐욕과 과격함, 지나친 욕심이 가족의 골욕상쟁과 한 나라의 멸망을 자초했다” 고 말했다.

23일 서울 신문로 민족정기선양협의회 사무실에서 월주 스님을 만났다. 61년 주지를 맡은 뒤 40여년간 한 곳에만 주석하며 가람을 일으킨 금산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다음달 24일 종영되는 KBS 1TV 드라마 ‘태조 왕건’ 은 최근 신검이 배다른 동생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는 후백제의 멸망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백제 법왕 원년인 599년에 창건된 금산사는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로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으로 유명하다. 한해 50여만명이 찾는 명찰이지만 요즘 드라마의 인기로 내방객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요즘 금산사에는 사찰의 협조로 견훤의 금산사 유폐와 탈출 장면이 촬영되고 있다.

월주 스님은 “‘태조 왕건’ 은 금산사가 작품의 한 배경이 되고 있고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즐겨보는 드라마라며 재미를 위주로 한 드라마이지만 현실에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고 밝혔다.

왕건 궁예 견훤은 당시 시대적 영향으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승려 출신인 궁예는 미륵불의 화신을 자처했고 견훤은 골육에 의해 옥좌에서 쫓겨나 금산사에 유폐됐다. 그런가 하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고려를 건국해 불교가 융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한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참칭(僭稱·멋대로 신분에 넘치는 칭호를 자칭함)입니다. 또 혹세무민이죠. 견훤은 용기있는 장군이지만 과격하고 사려깊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왕건은 민심을 살피는 상생의 정치와 인내로 큰 꿈을 이뤘습니다.

월주 스님은 특히 한때 후백제에 의해 나라가 흔들렸던 고려의 통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도선국사는 왕건에게 마음을 비워라. 그러면 삼한(三韓)이 들어온다 고 했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란 측면이 있지만 이 가르침에 충실한 왕건은 인내하고 과격하지 않아 대업을 이뤘습니다. 인내 자비 희사(喜捨)야말로 불교적인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월주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면서 정치 권력과 종단 내의 갈등으로 겪은 고난 때문에 더욱 생생한 교훈이 될지 모른다.

스님은 80년 제17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지만 10·27법난(法難)으로 6개월만에 퇴임했고 ,98년 총무원장 재직 시절에는 내부 분규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월주 스님은 “정치 권력은 10·27법난을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것” 이라며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정치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 현실을 겨냥한 말도 빠지지 않았다.

종교계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함축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큰 뜻을 품은 이들은 정직과 성실, 신뢰, 말에 대한 책임이 중요합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