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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해외무대 도전하는 프리마 발레리나 김지영

입력 | 2001-12-25 18:04:00


국립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김지영(23).

97년 18세로 최연소 입단한 그는 한국 발레계의 ‘보석’이다. 98년 파리국제발레콩쿠르 2인무 부문 1위, 미국 잭슨발레콩쿠르 동상, 2001년 러시아 카잔발레콩쿠르 여성 은상.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입단과 함께 첫 주역을 맡은 ‘노틀담의 꼽추’에서 세계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까지.

국립발레단의 ‘화려한 날들’은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국내 무대의 정상에 있는 그가 내년 토슈즈가 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해외 무대에 도전한다. 25일 막을 내린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 마리 역이 그의 국내 고별 무대였다.

#그룹 'god'의 '길'

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god’의 ‘길’을 흥얼거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어쩜, 노래가 내 얘기 같아요. 나의 꿈의 끝은 어디인지.” 평소에도 ‘god’를 좋아했다. 하지만 최근 4집의 ‘길’을 듣는 순간 발레 인생이 겹쳐져 확 빠졌다고 했다.

그는 개런티 1만달러를 받고 내년 2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제4회 일본 무용 콩쿠르의 개막 갈라쇼에 참가한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유명 발레단의 오디션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는 무척 부담스러운 눈치다. 무엇보다 그가 국내 발레계를 대표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입단에 성공했다고 해도 외국 발레단의 관례를 볼 때 군무(群舞) 진에서 다시 무용을 시작할 수도 있다.

왜 그는 국내에서 최소 10년간 보장될 프리마 발레리나의 프리미엄을 포기할까.

“내년부터 백수예요. 당장 3000만원의 연봉이 사라져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춤을 춘 비디오를 보면서 ‘벽’을 느꼈습니다. 내 춤이 내가 마음에 안드는 데 미치죠. 그것은 단지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발레가 뭐길래

92년 13세 때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다. 동양에서 온 단발머리 소녀는 세계적인 발레 스타의 산실로 유명한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5년을 지냈다. 한동안 충격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발레 신동’이었던 그도 이 학교에서는 평범한 발레리나 지망생이었다.

“그때 쓴 일기나 메모를 보면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수면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포기하고 한국에 오면 다 죽는다’는 거였죠. 발레를 제대로 배웠지만 말과 문화가 다른 이국 땅에서의 유학은 고통이었습니다.”

96년 바가노바 졸업 공연 때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불행이 닥쳤다. 어머니가 공연 사흘째 객석에서 쓰러진 뒤 딸의 곁을 영영 떠나버린 것이다.

김지영은 “해외 무대 도전은 가방 하나에 토슈즈, 발레복, 영어 사전을 넣으면 준비는 끝”이라며 “언제나 나를 지켜보는 엄마가 동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발톱이 빠졌네

며칠 전부터 아프던 오른쪽 엄지 발톱이 흔들거리다 쑥 빠져나갔다.

그는 연습을 준비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자에게 “이것 좀 보실래요”라고 했다. 그의 기억으로는 7번째 몸에서 빠져나간 발톱이다. 투박하다 못해 ‘무섭게’ 보이는 발은 그가 발레를 하면서 당한 부상과 땀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열살 때 발레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발톱이 빠졌을 때는 무척 행복한 느낌이었습니다. 열심히 땀흘린 결과인 것 같아서. 지금은 무덤덤하고 시원한 느낌만 들어요.”

튀튀와 토슈즈를 벗은 정장 차림의 프리마 발레리나는 앳된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특히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심야 영화관에서 챙겨 볼 정도로 영화광이다.

그는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 엇갈리는 사랑의 아픔에 가슴이 아파 펑펑 울었다”며“과거형이지만 이 나이에 사랑의 기억이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해외 무대에 나가 후회하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내 마음에서 ‘이게 가야되는 길이야’라는 속삭임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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