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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소신있는 美, 눈치보는 한국

입력 | 2001-12-24 18:30:00


이달 초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연방방송통신위원회(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의 아이린 우 아시아지역 담당관은 기자와 동행했던 우리나라 방송위원회 직원에게 “방송위의 정책 목표가 뭐냐”고 물었다.

‘정책 목표’라는 말에 고민하던 그 직원은 답변 대신, 정치권의 풍향에 따라 논란이 되어온 방송위원의 선출 방식과 방송위의 예산 집행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우회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기자도 ‘방송위원회의 정책 목표’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우씨는 FCC의 정책 목표에 대해서는 간명하고 단호하게 말해 대조를 보였다. 우씨는 “방송 통신 사업자 간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FCC의 정책목표”이라며 “이 목표를 위해서 FCC는 소송도 감수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해 FCC의 정책 결정을 보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소신이 분명하다. FCC는 4월 ABC 등 미국의 4대 네트워크가 신생 군소 네트워크를 인수 합병할 수 있도록 ‘이중 네트워크 규칙’을 고치면서 “현 방송 시장의 동향을 볼 때 이 규칙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FCC는 최근 거대 미디어 기업인 AT&T와 법정 공방을 감수하면서 규제를 내렸다. AT&T가 4월 ‘미디어 원’을 인수해 케이블TV 시장의 점유율을 42%까지 높이려하자 FCC가 “시장 독점의 위험이 있다”며 인수 취소 명령을 내렸고, AT&T는 이에대해 법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로버츠 소머스 국제문제 담당 국장은 “FCC는 행정부와 사법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말했다. FCC가 의회로부터 예산을 받는 독립된 합의제 기구로 정치권이나 방송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취재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전송 논란으로 지역민방 등 이해당사자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던 김정기 방송위원장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재전송 문제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고, 여러 곳에서 방송위원회의 무소신으로 방송 정책이 실종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었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