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탄요격미사일(ABM), 다시 말해 적이 발사한 미사일을 잡아내는 요격 미사일을 제한하자는 발상은 1967년 미국의 린든 존슨 행정부 때 처음 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한쪽에서 실수로라도 핵 미사일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세계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었던 시절의 얘기다. 아무튼 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미-소간 협상은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1972년 5월 26일 빛을 보게 됐다. 바로 ABM(Anti Ballistic Missile)협정이다.
▷ABM협정의 골자는 ‘미소 양국은 자국 수도 및 대륙간탄도탄(ICBM) 기지에만 각각 100기씩 요격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것이었다(1974년 의정서에서 1개 지역으로 축소됐다). 어느 한쪽이 선제 핵공격을 받은 뒤에도 2차 핵 보복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줌으로써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논리가 이 협정의 근저에 깔려 있었다. ABM협정의 유효 기간은 ‘무한정’이었다. ABM협정은 냉전시절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은 핵심 지주 중 하나였던 셈이다.
▷최근 미국이 ABM협정에서 탈퇴할 준비를 서두르는 모양이다. 미국은 이미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자국 영토 전체를 보호막으로 감싸는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ABM협정의 탈퇴 또는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던 차에 9·11 테러 참사를 겪고 나서는 MD 체제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진 듯이 보인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처럼 ‘지금과는 다른 시절에, 다른 적과 체결했던’ ABM협정이 사라진 이후, 세계의 평화는 무엇으로 보장될 수 있을지 지구촌 가족들은 불안할 뿐이다.
▷ABM협정이 사라진다는 건 우리로서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국이 MD 체제를 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이었고, 미국의 MD 체제 추진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쪽은 러시아라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북한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동시에 미중간 틈바구니에서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쉽지 않은 숙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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