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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의 문화비평]테러공포가 광기로 바뀌면…

입력 | 2001-11-06 18:48:00


빠르고 현란한 리듬이 울리는 가운데 한 사람이 서서 두 손으로 얇은 백지 한 장을 잡고 힘겹게 찢어 내려간다. 너무 빨라도 안 된다. 너무 느려도 안 된다. 종이는 보일 듯 말 듯 찢어지지만 마지막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크고 힘찬 몸짓을 요구하며 강하게 몰아치는 장단에 저항하면서 ‘천천히’, 다시 ‘천천히’ 찢어 내려가는 설치미술가 육근병의 이 짤막한 퍼포먼스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긴장을 낳는다. 종이를 찢어 내려가는 두 손을 보며, 그 동안 그의 작품 속에 설치됐던 수많은 눈들 대신 이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에 긴장의 핏발이 선다.

이 퍼포먼스에 리듬과 행위의 긴장이 있다면, 탄저균을 걱정하며 편지봉투를 찢는 미국인들의 손에는 생화학 테러에 대한 공포와 편지에 대한 호기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있다. 테러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신에게 배달된 편지 한 통을 펼쳐 보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견뎌내야 하는 현실은 공포를 일상화하고 긴장을 습관화한다.

사실 긴장은 어느 곳에나 있다.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거나 걸어갈 수 있는 것도 몸의 각 부분이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을 자극하며 긴장을 유발하는 일정 정도의 공포는 쾌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한 긴장을 강요하는 공포 속에서 매일매일을 보낼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과 마주치거나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을 피하기 위해 ‘회피전략’을 마련한다. 괜히 휘파람을 불거나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소리를 지르거나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때로는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러 고통을 자초함으로써 보다 큰 공포를 잊으려 하기도 한다. 정 안 되면 미쳐버리기라도 해야 공포의 긴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만일 공포에 당당히 맞서려 한다면 우선 당면한 사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맞설 대상도 파악이 되지 않고 이 공포의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예측할 수 없을 경우, 공포의 긴장은 한없이 고조되고 비이성적 폭력을 휘둘러 대거나 힘없이 좌절하게 된다.

이 때 흔히 나타나는 회피전략이 희생양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는 한 목표가 어떤 장애로 인해 달성될 수 없을 때 대신 다른 목표를 달성해 본래의 욕구를 대체 충족시키는 대상(代償)행동의 하나다. 공포를 분노로 바꿔 희생양을 향해 분출시킴으로써 공포의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내부 결속을 위해 희생양은 우선 밖에서 찾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내부에서라도 만들어 낸다. 13∼17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사냥의 광기는 바로 대상행동의 대표적 예였다.

그런데 정보가 특정 집단에 의해 통제되던 시절에는 마녀사냥이 손쉬운 대상행동의 방법일 수 있었지만, 이제 정보가 다수에게 공개 유통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마녀사냥은 자살행위일 수 있다. 손발을 묶은 채 물 속에 던져 넣은 후 떠오르는가를 시험해 본다거나 성서와 마녀의 무게를 비교해 보는 식으로는 더 이상 마녀임을 증명할 수 없다. 상대가 마녀임을 공개적으로 증명한 후 처형하지 않으면, 마녀를 처형하고도 도리어 심판자가 새로운 희생양으로 지목될 위험에 처한다. 공포의 긴장이 계속되는 동안 희생양을 찾는 화살은 끊임없이 새 목표를 찾아 달려가고 조급해진 사람들은 폭력성을 더해간다.

이쯤 됐으면 본래의 목표를 되돌아 볼 때다. 목표는 본래 마녀를 잡아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마녀의 유혹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