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어야 할텐데...'
내년 2월 서울 소재 H대학을 졸업할 안모씨(25)의 하루는 취업사이트를 체크하는 일로 시작한다. 이력서를 보낸 기업으로부터 혹시 연락이 왔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도록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안씨의 전공은 지난해 초만 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였던 컴퓨터공학.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 시스템스사가 인증하는 자격증을 따두었고 입대 전인 2학년 때 미국 어학연수도 1년 다녀왔다. 토익점수는 920점대. 이런 자격요건도 기업이 사람을 뽑지 않겠다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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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신입사원보다는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 위주로 채용구조가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기업 공기업 가릴 것 없이 최근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기업의 채용경쟁률은 100대 1을 쉽게 넘어서고 있다. 석박사, 해외유학파 등 고학력자들 역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학위에 따라 경력 프리미엄은커녕 뽑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사업계획을 긴축기조로 짜겠다고 밝히고 있어 취업대란은 장기화, 구조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좁은 취업문〓‘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취업시즌이다. 취업전문기관인 리크루트(www.recruit.co.kr)가 10월29∼31일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채용동향을 조사한 결과 올 연말까지 채용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은 15%에 불과했다.
이 밖에 ‘채용계획이 전혀 없다’는 기업이 32%, ‘채용을 이미 끝냈다’가 27%, ‘일정한 채용계획없이 필요할 때 조금씩 수시로 뽑겠다’가 26%로 조사됐다.
특히 ‘채용계획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들도 대부분이 신입사원을 뽑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력직이나 연구직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졸 신입사원들은 발 디딜 곳이 없는 실정이다.
아직 진행 중인 구조조정도 신규 채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테러사태의 여파로 각각 500명, 36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LG필립스디스플레이 등도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수시채용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인터넷 취업포털사이트
업체
인터넷 주소
잡링크
(www.joblink.co.kr)
스카우트
(www.scout.co.kr)
인크루트
(www.incruit.com)
헬로우잡
(www.hellojob.com)
잡코리아
(www.jobkorea.co.kr)
인크루트 이광석 사장은 “기업들이 기존사원마저 줄이는 형편에서 신규채용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라며 “석박사, 해외유학파들마저 치열한 경쟁을 보이는 것을 보면 우려했던 취업대란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고의 채용경쟁률〓올해 채용시장의 경쟁률은 수백대 1을 오르내리기 일쑤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식이다.
연봉이 높은 데다 소수의 인력만 뽑는 금융권의 채용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사원모집을 마친 굿모닝증권은 30명을 채용하는데 7500명이 지원해 25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9월에 3명을 모집한 동양선물은 1200명이 응시해 400 대 1, 동부증권은 25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합병 이후 처음 대졸 신입사원을 뽑은 한빛은행은 200명 모집에 1만1600명이 지원했다. 석사학위자는 물론 공인회계사, 미국 공인회계사(AICPA) 등 전문 자격증 소지자와 해외 대졸자도 대거 응시했다. 토익점수 900점이 넘는 지원자도 400여명에 달했다. 한미은행은 인터넷접수가 아닌 학교 추천방식으로 접수를 받았는데도 60명 모집에 2100명이 몰렸다.
최근 대졸 신입사원공채 원서접수를 마감한 현대·기아자동차는 300명 모집에 5만2000명이 몰려 17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석박사 학위취득자 비율도 13.9%나 됐다.
이 밖에 워커힐호텔은 140 대 1, LG텔레콤은 12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공기업인 대한투자무역진흥공사(KOTRA)의 경우 2002년 신입사원 21명 모집에 무려 2306명이 지원, 110 대 1로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한일합작법인인 도레이새한도 10명 모집에 3016명이 몰렸다. 이 회사 지원자의 10%이상이 토익 900점을 넘었으며 일본어능력 1급 지원자도 100여명이었다.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