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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화경/‘태풍없는 해’

입력 | 2001-10-15 18:22:00


삼국사기를 보면 바람을 ‘풍’ ‘대풍’ ‘폭풍’으로 나누고 바람의 세기를 ‘나무가 부러졌다’ ‘돌멩이가 굴렀다’ ‘기왓장이 날았다’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질풍’ ‘열풍’ 등으로 더욱 세분화해 12가지 바람이 등장한다. 또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집이 날아가는 ‘풍이(風異)’의 기록이 신라 때 24회, 고려 때엔 무려 135회나 등장하는데 이 풍이가 요즘으로 치면 태풍이 아닌가 싶다.

▷우리 기상청도 바람을 12가지로 나눈다. 풍향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가장 약한 바람이 ‘실바람’이고 깃발이 흔들릴 정도면 ‘산들바람’, 길바닥 종잇조각이 날리면 ‘건들바람’이다. 풍속이 초당 17m를 넘으면 ‘큰바람’이 되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면 ‘노대바람’, 풍속이 32.7m 이상으로 가장 센 바람은 ‘싹쓸바람’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8월 우리나라를 덮친 태풍 ‘프라피룬’은 순간최대풍속이 58.3m나 됐으니 ‘초특급 싹쓸바람’이라고 해야할까.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다. 처음엔 여자 이름만 따왔는데 이유가 여성처럼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소망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남녀 이름을 번갈아 쓴 것은 각국 여성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선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국제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이 10개씩 추천한 이름을 번갈아 붙인다. 8호 태풍의 이름 ‘도라지’는 북한, 16호 이름 ‘나리’는 우리 작품인데 사나운 태풍 이름치고는 너무 예쁘다.

▷태풍은 북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저기압으로 해마다 두세개가 우리나라를 할퀴고 지나간다. 1936년 8월에는 무려 1232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최악의 피해를 냈고 민족 명절 한가위를 덮친 1959년의 ‘사라’는 84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태풍이 항상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바닷물을 뒤엎어 적조를 없애고 여름내 쌓인 계곡의 쓰레기를 청소할 때는 고마운 태풍이다. 올해 태풍 스무개가 모두 우리나라를 비켜가 1988년 이후 13년 만에 ‘태풍 없는 해’가 됐다고 한다. 인명을 잃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적조가 유난히 극성을 부렸으니 뭐든 다 좋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게 세상이치인가.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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