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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도서/도쿄에서]神國論에 숨은 국수주의 망상

입력 | 2001-09-14 18:35:00


◇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고야스 노부쿠니 지음 / 이와나미현대문고 2001년

일본에서 국수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의 파도가 일기 시작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에도 시대의 '고쿠가쿠샤(國學者)'이자, 일본 사상의 거두로 추앙받고 있는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0-1801)가 바로 그이다.

노리나가가 혼신의 힘을 쏟아 몰두했던 분야는 "유교 및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일본에 존재했던 일본 고유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는 특히 유교에 강렬한 적의를 나타냈고, 일체의 '중국적인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배척했다. 그런 노리나가가 성전으로 받들었던 것은, 8세기에 일본의 국가 기원을 기록하기 위해서 조정에서 펴냈던 라는 책이었다.

는 우리의 이두처럼 한자음을 빌어서 일본어의 음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씌여졌는데, 그 해독은 오랜 동안의 수수께끼였다. 언어에 대해 대단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노리나가는, 35년에 걸쳐 해독에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전(全) 44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이다. 이러한 문헌학자로서의 노리나가의 실증주의적인 방법은, 지금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리나가가 거기에서 신들린 국수주의적인 사상을 끌어 내고 말았다는 점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일본이, 만국(萬國)보다 우월한 '신국(神國)'이라는 망상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이같은 노리나가의 담론이 왜 근대 일본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활보하고 있을까.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에 따르면, 근대 일본에서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지자마자 노리나가적인 담론이 소생했다고 한다. 그는, 노리나가의 담론을 신랄하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점에서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노리나가가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성을 백일하에 드러내고자 한다.

고야스는, 노리나가의 '고쿠가쿠(國學)적 담론'의 특징은, '이국(異國)'을 '이질적인 부정적 타자'로 설정한 뒤, 그 되비침으로서의 '자기(곧, 皇國)'를 성화하려는 데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데, '자기'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는 '중국적이 아닌 것'이라는 부정적인 화법으로밖에 답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즉, '일본적인 것'은 언어화도 개념화도 거부하는 것이며, 그것을 알고 싶으면 '신전(神典)'인 고지키를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노리나가의 논의는 '일본은 일본이다'라는, 자기순환적이고 동어반복적인 명제에 도달하고 만다.

한편, '고쿠가쿠(國學)적' 정신은 '이(理)'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무엇보다도 '자연'의 '마음'을 찬양하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자연'의 세계를 만세일계의 천황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신국(神國)'이라는 논리를 '고구가쿠샤(國學者)'들은 내세운다. 이것은 환상으로서의 '자기'에 매달리는 자폐증의 세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리나가에게 있어서 타자는 중국이었지만, '고쿠가쿠(國學)적' 담론은 이 타자에 다른 어떤 나라를 대입시켜도 성립되는 구조이다. 일본의 국수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은, 사실상 바로 이러한 노리나가적 담론, '고쿠가쿠(國學)적' 담론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리나가적 담론의 철저한 '탈구축'을 목표로 하는 고야스의 비판의 화살은, 일본의 자기중심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의 저 밑바닥까지 관통한다.

그러나,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국'을 되비침으로써 '자국'을 성화(聖化)하려는 내셔널리즘의 구조는, 결코 일본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