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학계 시민단체 원로 32명이 2일 발표한 ‘최근 언론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은 시민단체들도 성향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 성명은 언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언론종사자와 언론사의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언론사 세무조사로 사회혼돈을 가져왔고 정부가 언론사를 선별적으로 고발함으로써 공정성을 잃고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 성명은 일부 단체나 신문과 함께 언론개혁의 목청을 높여온 MBC, KBS 방송사 등 정부 지배 하에 있는 매체들에 대한 소유구조개선 등 개혁을 촉구했다. 이 같은 점에서 이 성명은 종래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나온 개혁 찬성 일변도의 메시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 성명에 참여한 각계 원로와 시민단체 대표들도 오랫동안 ‘시민단체’에 몸담아 온 사람이다. 따라서 정부, 일부 언론개혁 주장 단체 및 일부 미디어 등과 함께 ‘언론개혁’ 일변도의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일반에 인식돼 온 시민단체들도 단체의 성향이나 구성원에 따라 작금의 언론 사태를 달리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32인 성명에 대표가 참여한 단체는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녹색미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이다.
이 성명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총론에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성향별로 “각론에는 반대” “개인들의 의견 표명이란 점에서는 인정”“지지”등으로크게엇갈렸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 사무처장은 이날 “원로 성명은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한 우려 부분이 부각됐을 뿐 지난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냈던 성명과 큰 맥락에서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283개 시민사회단체들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가 7월23일 ‘언론개혁은 중단 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당시 성명에 정부의 언론탄압 우려에 대한 지적도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박 사무처장은 참여 인사들이 온건보수적 성향이고 원로들이란 점에서 ‘제3의 의견’으로 인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임삼진(林三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원로 성명의 일부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내용들과 달라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세중(李世中) 공동대표가 서명에 참여한 환경운동연합의 최열(崔冽) 사무총장은 “성명 내용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면서 “얼마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명의로 입장을 밝힌 단체 소속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석연(李石淵) 경실련 사무총장이 성명에 참여한 경실련의 실무자는 “부분적으로 주관이 개입된 대목이 적지 않은 듯 하다”면서도 “큰 틀에서는 옳은 얘기”라고 밝혔다.
송보경(宋寶炅) 이사와 김재옥(金在玉) 회장 등 2명의 간부가 성명에 참여한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성명의 내용을 단체의 입장으로 정리했다. 김자혜(金慈惠) 사무총장은 “단체 대표인 회장이 서명한 것이므로 성명 내용은 우리 단체의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송 이사는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일부 시민단체는 경실련 전 사무총장인 서경석(徐京錫)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가 이번 성명을 주도했으며 서명 참여자들이 90년대 초중반 경실련 주도로 만들어진 시민단체협의회 참여 인사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석연 총장은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예민한 시국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시민운동의 본래 취지에맞지않는것”이라고강조했다. 한편 서경석 대표는 “시민단체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