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시론]박상용/민주 강박증이 사학 망친다

입력 | 2001-06-25 18:52:00


21세기 지식 정보사회에서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이다. 무형자산은 교육으로부터 창출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현실은 처참하다. 초 중등학교의 교실이 실종됐고, 대학의 국제경쟁력도 한심한 수준이다. 교육의 공공성에 상응하는 경제적 책임을 국가가 부담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사립학교 관련법의 개정안을 보면 교육기관의 경영지배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 여당의 지도자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학의 재정과 지배구조의 문제는 사실 연관된 문제이며 정치철학의 부재에 연유한다.

교육산업은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대표적인 예다. 왜 그런가.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의 특성이 강하므로 수요가 많더라도 시장원리에 따라 등록금을 인상할 수 없다. 한편, 전통적인 교육은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산업이어서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려면 생산성이 향상되는 여타 산업에 비해서 비용 증가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교육산업에서는 적자가 불가피한 것이다. 적자의 불가피성, 이것이 바로 교육산업에 내재하는 시장실패의 원인이다.

교육산업의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서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 모든 나라에 보편화된 정치철학이다. 고등교육도 국공립대에서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립대학이란 사실 예외적인 존재이다. 명문 사립대가 예외적으로 많은 미국에서도 학생 수를 기준으로 보면 사립대의 비중은 겨우 20%에 불과하다. 일본은 사립대의 비중이 75%를 차지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나라이다. 일본과 미국은 정부가 사립대 재정의 10∼20%를 부담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전자통신과 시청각 기술의 발달로 교육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면서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교육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사립대 비중이 75%를 차지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립대 재정의 국가 부담률이 고작 3%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도 예외적인 국가이다. 정치철학의 부재에서 연유하는 대학교육의 두 가지 예외가 바로 대학교육의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 현상이고, 교육수준의 저하를 초래하는 주범이다.

교육의 정부실패는 사립학교 경영권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에서도 나타난다. 사립대학 재정의 정부 부담률도 낮고 사립대의 기여입학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사학에 대한 정부 간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만약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립학교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교육의 정부실패는 더 한층 심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개정안의 핵심은 대학의 교수회와 초·중등학교의 운영위원회를 의결기관으로 만들어 재단 이사회의 경영권을 사실상 이양한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한편으로는 비리를 일삼는 일부 사학재단의 전횡을 막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의 핵심인 자율과 책임을 담보하는 지배구조의 작동원리를 이해한다면 개정안은 개선보다는 개악임이 자명하다. 비리사학의 문제는 학교의 구성원과 사회의 감시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경영투명성의 향상으로 해결해야 하며, 법의 개정도 이런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학교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구성원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참여적 경영(participatory management)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참여적 경영과 민주적 경영은 다른 것이며, 학교는 민주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립학교 관련법의 개정안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국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도 초 중등교육은 붕괴하고 있고 세계 100위권 대학도 전무하다. 오죽하면 교육이민이 증가하는가. 교육산업에 내재하는 시장실패는 정부가 치유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산업은 정부실패의 표본이다. 우리의 교육이 정녕 실패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이 교육에 대한 정치철학을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사립학교의 재정과 경영지배구조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선결과제이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