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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은숙/일이 많아 여유 없을까요

입력 | 2001-05-27 18:53:00


살아가는 나날의 의미 같은 것은 물을 틈도 없이 애초에 삶이 내던져진 채로 그러하듯 바쁘게 살아지는 이즈음이다.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없다고 마냥 엄살만 떨 일도 아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하루를 맞아서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일 수는 없다.

무릇 어떤 것에나 비교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특히 어떤 삶이 더 낫고 잘 사는 삶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삶과 온라인으로만 소통하고 사이버 스페이스 세계를 유영하는 네티즌의 삶은 그 자체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혹은 못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더 자유롭기위해 일하는데…▼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설문조사에서 거의 매년 1위를 하는 피에르 신부의 자서전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설문조사는 이 신부의 삶 중에서 아주 비근한 한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가 들려주는 작은 일화는 항상 빨리빨리 서둘며,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수시로 자문하는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인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한 프랑스인 사업가에 관한 것이다.

사업가는 모래사장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들고 오는 한 인도인 어부를 보았다. 사업가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좋으시겠습니다! 또 잡으러 갈 거지요? 다음엔 나도 데려가 주세요.” 그 말을 듣고 어부는 “또 잡으러 가다니, 뭐 하게요?” 라고 되물었다. “물고기를 더 많이 갖게 되지 않습니까?” 하는 사업가의 대답에, 그러면 뭘 하느냐고 다시 어부가 물었다. “그걸 팔면 돈이 생기지 않습니까?” 사업가가 말했다. 어부는 그런 후에는 뭘 하느냐고 재우쳐 물었다. 사업가는 그 돈으로 일꾼들을 사서 또 많은 물고기를 잡아서 종국에는 부자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자신이 잘 아는 세계의 법칙에 대해 말해 주었다. 마침내 어부는 “부자가 되면 뭘 하느냐”고 마지막으로 되물었다. 사업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면 쉴 수가 있지 않습니까?” 말끝에 어부가 말하기를, “쉬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쉴 수 있습니다.”

이 우화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덜 가지고 덜 욕망해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우리는 결국 모두가 다 자유롭기 위해 일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소유물의 노예가 되어 최신 기기를 사들이면 사들일수록 더 많이 암기해야 할 그것의 사용법과 패스워드들은 늘어나는 것이다.

또 어느 날 사소한 고장이라도 날라치면 먼저 왈칵 물그릇을 쏟듯이 짜증부터 쏟아놓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기가 고장이 나거나 전원이 나감으로써 물질 앞에 급한 자신의 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삶의 가치가 나름대로 각각 존경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의 안쪽에는 이런 사고들이 깔려 있다. 많이 갖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개념의 소유로 치환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마음의 ‘비어 있음’은 단지 없음이 아니라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 알겠다. 내 마음의 여유 없음은 일과 또 다른 일 사이의 그 ‘사이’ 없음이 아니라 바로 여유를 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태도’의 없음이라는 것을. 따라서 여유를 만들려는 자세가 다양한 삶의 가치에 깨어 있고자 하는 노력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투명하고 끝없이 파란 하늘을 잃어버린다면 약간의 생활의 편이가 무슨 소용일 것인가?

▼삶의 다양한 가치 볼수 있어야▼

나날이 소유로부터, 집착으로부터 작별하듯이 산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소중한 삶의 세목들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치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은 일회적인 삶을 탕진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지켜보는 자의 너무나 이기적인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은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