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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항원사 국방부 '등잔 밑' 3년이나 은신

입력 | 2001-04-26 18:36:00


‘코앞에 두고도 못 잡았다.’

잠적한 뒤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종적이 묘연했던 박노항(朴魯恒) 원사는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3년을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 박원사의 은신처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에서 국방부 청사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7㎞에 불과하다. 도로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도 3.5㎞밖에 안된다.

국방부 검찰단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허를 찔렸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그가 28년간 헌병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터득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은신 요령을 십분 활용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원사는 98년 5월 도피를 결심하면서 동부이촌동만큼 좋은 은신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우선 다른 지역에 비해 부촌(富村)이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아 신분이 노출될 위험성이 그만큼 적다고 본 듯하다.

또 황급히 종적을 감추려다 보니 멀리 도피할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어 평소 잘 알고, 잘 다니던 곳을 골랐을 것으로 보인다. 서영득(徐泳得) 국방부 검찰단장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일단 이곳으로 숨어들었던 그가 내리 3년을 보낸 것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의 구조도 그가 숨기에 유리했다. 75년에 건설된 현대아파트는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멀고 수위실도 통합 운영돼 상대적으로 다른 아파트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얘기다. 더욱이 이웃과 서로 마주보는 계단식이 아니고, 15가구가 일렬로 늘어선 복도식 아파트여서 신분 노출의 위험이 더 적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현대아파트가 용산 미8군과 가깝고, 특히 편의점을 비롯한 복지시설이 집중된 사우스포스트와는 1㎞도 되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부대는 국내법 영역 밖이어서 수사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다 해외 도피를 꾀할 경우 영어를 배우기에도 용이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가 검거되기 전까지 영어공부에 열중했고 그의 아파트에서 미군부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영양제 등이 여러 종 발견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군 검찰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박 원사는 그가 잘 알고 지낸 10여명의 여인과는 접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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