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안거(安居)에 들어갔던 선승(禪僧)들이 만행(卍行)에 나섰다.
지난해 가을 낙엽을 밟으며 찾아들었던 산사 선방에서 은빛 눈을 밟으며 내려와 일부는 토굴을 찾아들고 또 더러는 저잣거리를 떠돌 것이다. 의발(衣鉢)을 넣은 걸망 하나 짊어지고 화두 하나 가슴에 품은 채…. 이들의 존재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불교는 여전히 건재하다.
팔만대장경과 함께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어온 대가람 법보(法寶)사찰 해인사. 이 곳에서도 7일 동(冬)안거 해제일을 만나 안거에 들었던 비구 비구니 선승 100여명이 산문을 나섰다.
동안거란 음력 10월 보름부터 다음해 정월 보름까지 겨울철 3개월 동안 불교 승려들이 일절 외부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행사. 여름철 3개월 동안의 선수행은 하(夏)안거라고 일컫는다.
올해는 불교 조계종 승려 1만여명 가운데 1666명이 전국 82개 선원에서 동안거에 참가했다. 동안거의 경우 재작년 1536명, 작년 1631명 등으로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번 하안거 때까지 빠짐없이 해제법어를 발표했던 혜암(慧菴)종정이 이번 동안거에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법문을 내지 못했다. 종정스님이 머물고 있는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微笑窟)에는 일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해인총림 방장 법전(法典)스님은 이날 해제법어를 통해 “해제와 결제가 날짜와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의심이 죽어 있으면 결제를 해도 결제가 아니요, 의심이 살아있으면 해제를 해도 해제가 아니다”며 선승들의 중단없는 수행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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