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저항의 작가' 공지영, 침묵깨고 재기작으로 문학상

입력 | 2001-01-08 18:48:00


1980년대 변혁의 꿈을 우울하게 반추해왔던 ‘후일담 문학’의 작가 공지영(38)이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다.

3년 가까운 공백에는 여성지의 머리를 장식했던 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결혼이 있었고, ‘이제는 소리 지르지 않고 소곤소곤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왔다’는 깨우침이 있었다.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재기작이면서 생애 첫 문학상(‘21세기 문학상’)을 안겨준 단편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21세기 문학상 수상작품집’·이수刊)에 있다. 친 언니임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출생의 진실에 번민하는 소설가를 통해 작가 공지영은 소설적 여과장치 없이 스스로를 분석하고 있다.

“그간 고민했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사춘기적인 질문이었어요. 내 삶이 겪은 위기의 국면을 그대로 소설로 보여줌으로써 존재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었던 거죠.”

스스로를 발가벗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심적인 안정을 찾았으며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뜻한다. 출생의 의혹을 확인시켜줄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대신 아픈 아이에게로 발길을 돌린다는 결론은 과거의 진실 대신 현재의 운명을 선택하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제는 다만 ‘정직한 글쓰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어요. 시궁창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되 더러워지지 않고, 고난에 함께 울되 잠겨 버리지 않는 것, 초월하지도 않고 압사당하지도 않는 그런…”.

생활인으로서의 근황에 대해 그는 “남편(한신대 이해영 교수) 뒷바라지와 세 아이의 뒷바라지에 여성성을 거의 상실할 지경”이라며 웃는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 아이는 사춘기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둘째는 반항심이 남달라서, 세 살된 막내 아이는 아직 대소변 못가려서 늘 말썽이라 한다. 매일 소리소리를 지르며 ‘전투’를 벌여서 그런지 목소리도 중년 여성 특유의 하이톤이다.

지난 연말 남편과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보고 온 그는 그 내용을 담은 기행문을 다음달 출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뒤이어 나올 추리소설은 일찌감치 죽일 사람과 정황이 모두 마련됐지만 살인범에게 어떤 시대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 중이다. 또한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을 다룬 역사 장편도 오래 전에 구상을 마쳤다.

그는 “앞으로 이야기 스타일이 달라지겠지만 ‘저항과 진보의 정신’ 만큼은 끝까지 간직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21세기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도 그는 ‘그들로 하여금 떠들게 하고 나는 다만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급속히 사(私)소설로 경도돼가는 오늘날 문학 지형에서 참여문학의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타성에 젖은 글쓰기를 하느니 차라리 빵굽기를 배우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어떤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digana@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