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에 대한 들뜬 기대 속에 화려하게 출범한 2000년 한국 경제는 볼품 없는 모습으로 한해를 마감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거시경제 이론을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최단시일 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완전극복’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던가. 그것도 알고 보니 경제의 거품 발생에 따른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구조조정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구조조정을 한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공적자금만 잔뜩 퍼부었지 그 실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사실을 시장이 인식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우리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경기가 급락하고 있다. 금융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실업의 가능성이 예견되면서 추운 겨울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대외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확산되고 있으며 일본과 동남아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는 등 해외의 여건도 불리하게만 돌아가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경제가 다시 IMF 관리체제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제 전문 예측기관들이 그럴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고 IMF도 같은 견해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은 한번 놀란 가슴이라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전반적인 금융시장 여건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연초 1066 수준까지 상승한 종합주가지수는 504로 마감돼 53% 하락했고 정보통신산업의 거품 붕괴에다 주가조작 스캔들까지 겹친 코스닥지수는 최고 292선에서 82%나 폭락한 52로 마감했다. 사실상 증시 기능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회사채의 최대 매수처였던 투신의 몰락은 회사채시장의 급격한 위축을 불러왔고, 이는 종합금융사 영업의 후퇴와 함께 기업에 대한 신용경색 현상으로 이어졌다. 연말이 되면서 그동안 안정세를 유지해온 환율마저 급격히 상승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듯 올 한해 우리 경제는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고리를 끊고 경제회복의 모멘텀을 마련하는 길은 신속한 금융부실의 처리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강력한 추진뿐이다. 이를 통해 시장리스크를 해소하고 기업의 신용위험을 제거함으로써 금융을 정상화하고 실물부문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해 나가려면 수많은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현재 추진중인 금융산업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작업이 많은 난관에 부닥치고 때로는 방향이 수정되는 것을 보면서 그 작업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적당히 눈가림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시장을 속일 수 없다는 것도 금년에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대목이다.
올해 우리 경제를 되돌아보면 ‘오랜 탐험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우리는 다시 탐험을 시작한 곳에 서있었다’는 T S 엘리엇의 시구가 떠오른다. 우리가 그 탐험으로부터 얻어낸 고귀한 교훈에서 올바른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내년 이맘때에는 우리는 한해 경제에 대해 지금과 판이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진영욱(한화증권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