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4집 '꽃'이 소리소문 없이 음반 판매고 30만장을 넘어섰다. 수억원을 투자한 뮤직비디오나 현란한 백댄서 없이 그의 '잔잔한 음악'이 겨울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늪'의 조관우가 '얼굴 없는 가수'로 밀리언셀러가 된 적은 있지만 콘서트나 가요 프로그램에 전혀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이소라가 이런 흥행을 기록중이라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음반 홍보비가 평균 2억~3억원을 넘어서는 가요 시장에서 음악만 발표해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기란 극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소라는 매스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지극히 꺼린다. 인터뷰에 관한 한 매니저도 두손 두발을 들었다고 말할 정도니 '대인기피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자 역시 이소라와 5년 가까운 인연을 갖고 있지만 인터뷰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그가 유일하게 얼굴을 보이고 있는 KBS 녹화 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출연진이 리허설을 다 끝내고 난 오후 5시경 출연자 대기실에서 분장을 하고 있던 그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인터뷰하자'는 말을 꺼내자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할말도 없고…. 그냥 음악 나오면 써주시면 안돼요?"
인터뷰를 억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간단한 근황 얘기만 나누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소라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난 행복해'를 발표했던 96년 가을 무렵이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인터뷰 내내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하도 궁금해서 "무얼 그리 열심히 쓰고 있냐"고 묻자 "그냥 단순한 낙서"라고 말했다.
그는 "흐리고 나지막한 가을날이 너무 좋다"거나 "11월1일은 공교롭게도 김현식과 유재하가 하늘로 떠난 날"이라고 혼잣말처럼 읊조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중성적인 목소리로 '이소라 열풍'을 일으켰을 당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촬영 날짜로 잡은 당일 그는 갑작스럽게 '사진을 찍지 않겠다'면서 매니저와 말다툼을 벌였다. 몇 시간을 달랜 끝에 간신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지만 이소라의 낯가림은 생각보다 심했던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소라의 '얼굴 숨기기'가 전술이나 전략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수는 음악으로 평가받으면 된다'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한 것일지 모른다.
언젠가 그가 기자에게 했던 말이 있다. "전 혼자 있는 것을 즐겨요. 영화 보고 재즈 음악 듣고 낙서하면서 가끔 컴퓨터에도 들어가 보고…. 누군가에게 구속되거나 눈치보지 않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요."
어눌하면서 편안한 진행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이소라. 고집스런 그의 성격으로 미뤄볼 때 이소라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처럼 스스로 노랫말을 쓰고 좋은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 음반을 내면서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음악을 선보일 것이다. 그가 고요하지만 넓은 파동을 가진 여가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