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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보의 옛날신문 읽기]크리스마스에는 빗자루 놀이를 하세요

입력 | 2000-12-18 12:04:00


또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달력을 보니 황금의 크리스마스 연휴네요. 24일이 일요일, 25일이 월요일이니 직장인들은 앞뒤로 하루이틀 연월차를 사용하면 사나흘간의 황금휴가를 즐길 수 있겠습니다.

달력을 보다 옛날신문들은 연말연시와 크리스마스 때 어떤 기사들을 썼을까 궁금해졌습니다. 1967년 연말의 조선일보 스크랩을 뒤져보았지요.

12월26일자를 보니 골프기사가 실려있군요. 제목은 `서울컨트리엔 새주차장-아주 한산한 X-마스 연휴'라고 붙어있습니다.

< 서울 컨트리글럽은 그 자리에 국회가 들어선다는 풍문에도 아랑곳 없이 클럽 하우스 입구 도로와 주차장을 지난 20일 230여만원을 들여 아스팔트로 포장했으며 새해에는 2억원을 들여 클럽하우스를 새로 짓기로 이사회에서 결정했다고-....

X-마스 연휴인 24, 25 양일 각 골프장은 매우 한산해서 고작 30~1백명 내외의 골퍼들이 눈을 페어웨이에서 언 공을 쫓고 있을 뿐- (하략) >

그리고 기사는 그해 탄생한 골프의 고수, 싱글 플레이어들 3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만한 사람은 김형욱 뿐이군요. 박정희 정권시절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객지에서 실종됐다고도 하고 사망했다고도 하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몰랐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골프의 귀재였군요.

기사는 친철하게도 다음해 싱글 플레이어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14명의 골퍼들도 거명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역시 제가 이름을 알아볼만한 사람들은 김정렬 김성곤 이재형 김치열 등입니다.

기자는 마무리 부분에 < 이들은 10년 이상된 플레이어들이니 싱글의 길은 참 멀기도 하다 >고 쓰고 있네요.

이 기사 일주일 전인 12월19일에도 골프기사가 한편 실려있네요. `박정희 대통령 코수술 후 첫 골프' 기사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이 17일 코수술 후 처음으로 골프를 쳤다.

오후 1시반 한양에 나온 박 대통령은 원 무임소장관, 신 대변인과 함게 풀코스 아닌 나인(9) 코스만 돌았는데 밤색 잠바에 골프바지를 입은 박 대통령은 몹시 활달해 보였으며 `컨디션이 매우 좋다'고 눈덮인 페어웨이에서 즐거운 표정.

청와대 그린에서 연습을 쌓은 박 대통령이 처음 골프장에 나오기는 작년 11월-. 한양에 찾아온 박 대통령은 이일안 헤드프로의 가이드로 풀코스를 돌면서 멀리 보이는 한강 등 사방의 경치가 좋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반. 박 대통령을 두 번째 맞아 들뜬 한영직원들은 지난달에 새로 마련한 귀빈실로 새로 안내, 음식을 대접했는데 박 대통령은 얼근한 동태찌게 두 그릇에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들었다고-.

이어 박태원 경기도지사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가지고 나타나 대통령에게 장시간 브리핑을 했는데 내용은 경부고속도로에 관한 것-. (하략) >

그날 국정수행에 여념이 없으신 대통령께서 모처럼 작심하고 골프 나들이를 하신 모양입니다. 골프에 입문한 것이 66년말이라니 61년 `군사혁명'을 하시고도 한참 세월이 지난 뒤로군요.

저 서민적인 대통령의 면모를 보세요.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찌게 두 그릇, 우동 한 그릇'이라는 메뉴는 얼마나 소박합니까.

자, 이제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쓴 기사를 보시겠습니다. 12월24일자로군요. 제목은 `X-마스를 즐겁게, 방(房)안놀이 몇가지'네요.

기사는 <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가족이나 친구끼리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안놀이 몇가지를 소개한다 >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굴 트위스트' `디딤돌 놀이' `벙어리 경주' `비 잡기' `하하하 웃기 게임' `속담잇기 놀이' `촛불 끄기' 등의 놀이를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비 잡기'라는 놀이가 재밌네요.

빗자루를 이용한 게임이지요. 술래가 빗자루를 잡고 있다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빗자루를 놓아버린대요. 이름이 불린 사람은 그 빗자루가 쓰러지기 전에 얼른 잡아세워야지요. 빗자루가 쓰러지면 벌칙을 받습니다.

`하하하 웃기'는 정말 `하하하...'하고 웃음이 나오는 놀이입니다. 빙 둘러앉아서 첫번째 사람이 `하' 웃습니다. 두 번째는 `하하', 세번째는 `하하하'.... 이렇게 계속 돌다보면 덜 웃거나 더 웃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인데, 그 사람이 벌칙을 받는거지요.

< 여자가 웃음을 못참는 경향이므로 여성을 골탕먹일 목적으로 해보면 재미있다 >는 사족도 붙어있네요.

`얼굴 트위스트'도 참 재밌어요. 먼저 놀이 참가자들은 찢은 종이를 자기 얼굴에 붙인대요. 그 다음 안면 근육을 움직여 그 종이를 먼저 바닥에 떨어뜨리면 이기는 겁니다.

이 게임의 설명문 말미에는 < 밥풀을 사용하면 아까우니까 침을 쓰는게 경제적 > 이라는 충고가 붙어있습니다.

아참, 이런 놀이들을 알려주신 분을 소개해드려야겠군요. 유근석 한양대 교수님이십니다. 요즘같으면 무슨 `레크레이션 지도자'들이 할 일을 교수님께서 하시고 있군요.

1967년 겨울-.

각자의 사정에 따라 골프채를 잡거나 빗자루를 잡으면서, 동태찌게를 먹거나 밥풀을 아껴가면서 나름대로 즐겁게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늘보 letitb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