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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교수의 생명코드풀기]유전자에도 '자살특공대'

입력 | 2000-08-29 20:11:00


인체 유전자 중에는 특정 신호가 주어지면 자기 몸의 세포를 죽게 만드는 ‘자살유전자’가 있다.

DNA는 세포 내부 대사의 산물이나 외부의 환경인자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다. 세포는 이런 공격으로 인해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유전정보를 지키는 안전장치를 발전시키며 진화해 왔다.

DNA에 손상이 생기면 우선 이를 수선하고 복구하는 단백질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엔 수선할 시간을 벌고 또 수선되지 않은 유전정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잠시 세포분열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손상 범위가 너무 크거나 수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살유전자를 작동시켜 결함이 있는 세포를 사망하게 함으로써 잘못된 유전정보가 전파되거나 결함세포 하나로 인해 몸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것을 예방한다.

또 더이상 쓸모 없거나 병든 세포를 염증반응 없이 제거한다. 용도를 다한 임파구를 제거하여 불필요한 면역반응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거나 결함이 있는 정자를 제거하여 유전적 결함이 자손에 전파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예이다.

태아의 뇌에서 연결성을 획득하지 못한 미성숙 뇌세포를 제거하고 벙어리 장갑같던 세포 덩어리에서 손가락이 생겨나도록 한다. 흉선에서 도태된 미성숙 임파구를 제거하는 것도 여러 자살유전자들이 협력한 결과이다.

인체를 지키는 자살유전자의 기능이 지나치게 발휘되거나 정작 필요할 때 그 기능이 억압되면 여러 중대한 질병이 발생한다. 치매 헌팅턴병 등과 같은 병이나 심근경색 등은 과도한 자살유전자의 작용으로 세포가 지나치게 파괴되어 생긴다. 반면 암세포나 일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자살유전자의 기능을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지난 10년간 자살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이들의 기능을 억제하거나 되살려 난치병들을 제어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임상시험에 들어간 경우도 상당수이다.

과학자들은 자살유전자의 활동을 방해해 알츠하이머병 심근경색이나 근육세포가 위축돼 20대를 넘기기 힘든 ‘근이영양증’ 등을 고칠 수 있는 유전자치료제가 이르면 5, 6년 내에 첫선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