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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신간]'포스트 모더니즘의 환상'

입력 | 2000-05-12 19:19:00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테리 이글턴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우리는 이글턴이 ‘문학이론입문’에서 영문학이라는 것이 일정한 역사적 정치적 필요와 효용성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의 충격과 신선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영문학의 후광을 가차없이 벗겨내고 그 계급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드러내 주었을 때의 흥분을 말이다.

이글턴이 이번 저서(원제목 The Illusions of Postmodernism)에서 하고 있는 작업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떠들썩한 풍문 뒤에,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불러일으킨 환상 뒤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탈신비화 작업이다.

그는 논리분석철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강의실에서나 있을 법하게 ‘그 말은 실제로 무슨 의미인가’를 끈질기게 물으며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리고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의 실례를 들이대 거창한 이론의 뒤통수를 치거나(‘당신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가?’) 아니면 갑자기 ‘그것이 핵위협의 현실이나 아프리카의 기아해소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고 되받아쳐서 논의의 맥을 끊어버린다.

이런 식의 수사적 어법은 헤겔의 변증법적 전통에 있는 테오도르 아도르노나 프레드릭 제임슨이 보기에는 변증법적 사유의 빈곤의 징후라 하겠지만 그런 비판에 기죽을 이글턴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변증법이 밥먹여주나?’라고 비꼴 것이며, 여기가 바로 아도르노나 제임슨의 골치아픈 글에 열등감을 느끼던 독자들이 이글턴을 읽으면서 뭔가 기가 살고 신나는 기분이 드는 대목이다.

예컨대 ‘주체란 애초에 탈중심적인 것이고 분열적인 것’이라는 포스트모던 이론에 대해 이글턴은 이러한 이론을 듣고 좋아할 사람과 걱정할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 즉, 그 이론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광고업주라면 좋아할 것이고, 전통적 규범론자라면 도덕적 책임의 증발을 걱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수많은 복잡한 담론들을 일거에 교통정리해 버리는 상쾌함이 이 책의 미덕이다.

사실 주체가 자율성 및 자기동일성을 지닌 것인가 아닌가는 그 자체의 진위를 두고 아무리 논쟁을 벌여봤자 결론이 날 형국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본질주의와 반본질주의, 목적론과 우연론, 근본주의와 반근본주의 등의 이분법적 대립도 진리정합설이나 진리대응설을 가지고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진리개념이 바로 현실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본질론 또는 비본질론을 선택했을 경우, 어떤 정황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것을 선택하는가를 따져본다면 본질론 자체의 시비로 인한 소모전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글턴식 해체론이다.

따라서 이글턴이 ‘나는 위계질서적, 본질주의적, 목적론적, 메타-역사적, 보편주의적 인본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때, 이처럼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나는 파시스트이며 인종주의자이며 성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할 때의 위험은 감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글턴이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런 용어가 전제하는 이분법적 대립이 거짓문제임을 밝히려는 수사적 어법이다.

▼이글턴이 보기에 정말 절박한 것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인간의 문제다. 즉 “먹는 것,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는 것,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존과 복지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정치적으로 규범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세련된 사고에 충격을 주는 이런 용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요구라는 힘으로 앞서 말한 이분법적 대립들을 해소시키는 힘을 갖는다.

계급과 혁명과 역사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 요구에 바탕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다른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글턴은 일찍이 해체론과 관련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안/밖을 해체하는 것은 파리의 좌파지식인이 아니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다.”

그러나 이글턴에게도 함정은 있다. 이글턴식의 수사법은 또하나의 수사법으로 모방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정말로 역사가 복잡하고 변증법적인 사고를 요구할 때, 그만큼 사안이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을 때, 이글턴에게서 되받아치는 법만 배우고 말 것을 우려하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김준환 옮김 243쪽 1만원.

이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