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다. 50년 헌정사에서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장기집권 30년을 제하고 나면 20년 만에 4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니 외양만으로는 민주주의의 틀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은 과도기의 ‘명목상 수반’을 넘지 못했고, 두 사람은 반란과 뇌물수수 등으로 단죄되었으니 비록 사면복권이 됐다고는 하나 사실상 전직 대통령의 대접을 받기조차 민망한 처지다. 그러고 보면 IMF위기의 책임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나마 ‘유일한 전직’은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이라고 하겠다.
▷그런 YS가 엊그제 현직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만났다. 2년2개월만의 만남이라니 전현직 사이에 파였던 골이 깊고도 길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여러 정치적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반목과 대립으로 치닫던 전현직 대통령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한 번의 만남으로 등돌렸던 시간들이 일시에 채워질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는 법이다.
▷1970년대 이후 DJ와 YS는 ‘경쟁적 의존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른바 ‘양김시대’는 좋든 싫든 우리 현대사의 큰 축이었다. 두 사람은 민주화투쟁에는 손을 잡다가도 권력을 잡을 기회가 올 때면 돌아섰다. 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과 민주화를 더디게 한 분열이란 이율배반적 공과(功過)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87년의 분열은 그 근본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영호남 지역감정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지역감정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전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것은 그 모습만으로도 지역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으나 진정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자주 만난다면 우리 국민은 머잖아 명실상부한 2명의 전직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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