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6대 포커스 이사람]정몽준의원/차세대주자 주목

입력 | 2000-05-10 18:22:00


‘4·13’ 총선 선거전이 한창이던 4월초, 울산 동구에 출마한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은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피하지 않겠다.”

때가 선거철이고 ‘…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어 언뜻 하나마나한 얘기 같았지만 평소 정의원 어법에 비춰보면 나름대로 진일보한 입장 표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질문에 대한 그의 일관된 답변은 ‘관심 없다’였다.

총선 후 한달 가까이 지난 요즘은 어떨까. 9일 오전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회장실에서 만난 정의원에게 다짜고짜 대권도전 의사를 물었다. “어정쩡하게 답하지 말고 한번 딱 부러지게 말해보라”고….

순간, 정의원은 특유의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대통령이 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은 어쩐지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 나라를 위해 대통령이 될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에서 입을 다물었다. 명확한 언급은 없었지만 ‘인상적으로는’ 출마의향이 깊게 자리잡은 듯했다.

사실 정의원이 대권도전 가능인물로 꼽혀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2년 부친인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대권도전에 실패한 뒤, 그에겐 줄곧 ‘차세대 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이렇게 보면 정의원이 대권도전의 뜻을 시사한다고 해서 뜻밖의 뉴스도 아니다. 관심사는 오히려 그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대권 행보를 구체화하느냐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원이 던진 말이 관심을 끌었다. “자민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3당’은 한계가 있다. 국민의 의식 속에는 ‘양당제 구도’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회가 닿으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얘기였다. 곧바로 ‘혹 민주당 쪽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스쳤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선 주자가 사실상 이회창(李會昌)총재로 굳어지는 분위기인 반면, 민주당의 구도는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정의원에게 “이번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면 당선됐을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당선됐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얘기는 여기서 더 진전되지 않았다. ‘가상행로(假想行路)’와 ‘현실행로’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괴리를 좁힐만한 단서가 아직은 별로 보이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