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던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본사 14층 회의실. 이계안(李啓安)현대자동차 사장은 현대차가 다임러크라이슬러, 미쓰비시와 ‘월드카’ 생산을 위해 손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연구개발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이충구(李忠九)사장과 기획조정실장인 정순원(鄭淳元)부사장 등 현대차의 최고 경영진이 모두 배석했다.
이계안사장은 “한국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자동차산업 사상 가장 의미있는 제휴”라고 강조하고 “크게 잘 써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하루만에 반전됐다. 제휴사로 지목된 다임러와 미쓰비시가 현대의 발표내용 자체를 부인해버렸다. 현대측은 즉각 “최고경영진 사이에 극비리에 합의된 내용이기 때문에 실무진에선 모를 수도 있다”고 해명했고 ‘일요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참여했던 경영진들은 대책회의를 하느라 하루종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제휴 당사자가 부인함으로써 현대차는 국제적인 망신을 했다. 설령 제휴에 대한 논의가 있었더라도 3사간에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 현대차 전문경영인들이 국제 비즈니스의 기본룰조차 몰랐을까. 만약 몰랐다면 국내 최대 자동차제조사의 경영자 자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제휴사들이 부인할 것이라는 결과를 예상하고도 발표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면 더 큰 문제다.
이번 월드카 파문을 보면서 지난번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현대차 경영진은 일요일에 기자회견을 자청,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진의’를 언론에 공개했다가 하루만에 뒤집어졌다.
초래할 결과를 뻔히 알면서 ‘웃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면 ‘웃분’의 능력과 한국 전문경영인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홍석민(경제부)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