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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정갑영/외환보유고 확충 시급하다

입력 | 2000-02-20 20:02:00


연초부터 외환시장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엔화 약세로 무역적자는 확대되는데 환율은 오히려 넘치는 달러에 밀려 인하압력만 커지고 있다. 불과 2년 전 바닥이 났던 달러를 생각하면 적어도 문제이고 많아도 고민인 것 같다.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수입가격은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상승한다. 그래서 물가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입은 늘고 수출은 줄어 무역적자는 확대된다. 실제로 지난해 환율이 17.6%나 떨어졌으니 27개월만의 적자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올해도 경기회복에 따른 수입확대와 유가 상승, 엔저현상까지 겹쳐 적자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환율을 일정하게 붙들어 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 개입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을 핑계로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정책당국이 어려운 딜레마를 풀어나가야 할 기로에 서 있다. 특히 무역과 여행경비를 포함하는 경상거래가 적자로 돌아서는데, 과다한 자금유입으로 환율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에는 시장지향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시장환율이 원화의 실질적 가치와 유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금융장세에서 실질가치가 낮은 주식이 풍부한 유동성에 의해 턱없이 상승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전에도 흡사한 현상이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95년 81억달러에서 96년에 230억달러로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외화자금이 원화가치의 하락을 막아줬다. 이것은 다시 적자를 심화시켰고 결국 달러 부족으로 인한 환란을 불러오지 않았는가. 외화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환율의 왜곡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경험한 셈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작은 개방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의 안정과 경상수지의 흑자가 필수적이다. 외환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특히 단기자금의 유출입이 활발할수록 외환시장 안정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해 줘야만 한다. 어떻게 이 기본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먼저 환율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장지향적 수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외채의 조기상환이 가장 시급하다.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외환보유고를 대폭 확대해 단기와 장기의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783억달러의 보유고는 환란 이전보다 크게 확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인 증권투자의 시가만도 647억달러나 되며, 여기에 370억달러의 단기외채를 합하면 유동자금이 1000억달러를 넘는다. 이중 일부만 급속히 빠져나가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상당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풍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없다. 충분한 ‘실탄’이 있어야만 정책의지에도 무게가 실리고 대외신인도가 높아져 시장안정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국내총생산(GDP)의 20%에도 못미친다. 외환위기의 영향이 가장 적었던 싱가포르(88.3%) 대만(40.6%) 홍콩(58.8%)은 물론 태국과 인도네시아보다도 낮다. 겨우 중국(16.0%)과 유사한 수준이다. 한국도 최소한 GDP의 30% 수준인 1200억달러 이상 확보해야 한다. 물론 보유고의 확대는 통화량 증발과 금리차이로 인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경제가 글로벌 풍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기본경비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보유외환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공사 같은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규모 자체가 적어 투자로 전용할 만한 여유도 없고 중앙은행에서 분리돼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오히려 시장이 불확실할수록 금리와 환율을 연계해 운용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기능을 강화시켜 줘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보유비용에 연연하거나 물가안정을 볼모로 근시안적인 대책에 집착하지 말고 외환보유고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개방도가 높고 단기자본의 유출입이 많을수록 보유 규모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정갑영(연세대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