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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의 힘]'通商무기' 영어배우기 열풍

입력 | 2000-02-17 19:40:00


98년 3월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취임 기자회견. 이날 주총리의 영어 통역에 나선 한 여성이 현장에 모인 국내외 기자들은 물론 TV를 통해 회견을 지켜보는 중국 전역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주총리가 구사하는 수많은 경제용어와 고사성어, 유머 등을 유창하게 통역해 기자회견장을 감탄과 웃음의 바다로 만든데다 아름다운 용모까지 갖췄기 때문.

이날 통역에 나선 여성은 중국 외교부 번역실 소속의 주퉁(朱桐·32). 주는 이날 이후 단번에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가 한번도 해외유학을 한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였다는 점.

올해 초 중국을 방문한 요르단 국왕과 장쩌민(江澤民)주석의 정상회담을 통역한 다이칭리(戴慶利·27)도 주 못지않는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이 역시 순수 국내파 통역사.

중국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의 20여명 통역사 대부분이 유학경험이 없는 국내파”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영어학습 붐이 일어난 것은 90년대 중반. 개혁 개방이후 중국 경제의 대외 비중이 높아지면서 외국인과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른 것. 이에 따라 영어는 제1외국어로 빠른 속도로 저변을 넓혀갔다. 96년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어 조기교육 붐은 최근 유치원에까지 확산됐다.

베이징 하이뎬(海淀)구에 있는 신둥팡(新東方)영어학원. 97년과 98년 두해 동안 무려 5만여명의 학생이 이 학원을 거쳐갔다. 이 학원은 겨울방학 동안 30여개 반을 개설한다. 영어 열풍을 상징하듯 한 반의 학생수는 무려 500∼600명. 토플이나 GRE를 준비하는 유학지망생들이 대부분이다. 93년 설립 이후 GRE성적 2380점 이상의 수강자를 1만명 이상 배출했다는 것이 이 학원측의 설명이다. 토플점수 600점 이상은 부지기수.

베이징의 또 다른 유명 영어학원인 신차오(新橋)외국어학교는 철저히 회화중심으로 가르치는 곳. 96년 두 곳에 문을 열었으나 1년후 7곳으로 늘어났다. 40여명의 강사 모두 영어권에서 온 외국인. 한 강좌기간이 2개월인 이 학원에는 강좌마다 2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거쳐간다. 대부분 외국인 투자회사에 근무하거나 취직을 준비하는 직장인이다. 이 학원을 설립한 한국인 원장 이교준(李敎准·48)씨는 “중국인들은 적극적인데다 중국어와 영어가 어순이 비슷해 발전속도가 빠르다”며 “영어를 잘하면 봉급이 올라가는 것도 영어학습 붐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열풍도 식을 줄 모른다. 중국에서 공산권을 제외한 해외유학은 78년 개혁개방 이후 가능해졌다. 98년말까지 모두 32만명이 유학을 떠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5만명은 국공립 장학금을 받아 떠났고 17만명은 자비 유학생.

그동안 중국 유학생은 주로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생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기유학이 늘고 있고 유학생수도 급증했다. 광둥(廣東)성과 푸젠(福建)성에서는 초등학생 유학 붐이 일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의 유학 붐과 관련해 칭화(淸華)대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이해 △새로운 생활에 대한 체험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해외로 나가 경험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

이들은 귀국하면 정부기관이나 연구소의 요직에 배치된다. 최근에는 귀국유학생 창업도 늘고 있다. 지난 20년간 유학생 11만명이 귀국했다. 이들은 젊은 간부를 등용하는 정부의 ‘연경화(年輕化)’방침에 따라 중견간부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 등에 남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말 현재 실리콘밸리 소재 2775개 기업 가운데 중국과 인도계 엔지니어수는 25만8000명. 실리콘 밸리 엔지니어의 5분의 1이 중국인이라는 조사도 있다.

95년 중국어판 인터넷 사이트 야후를 만들어 80억달러의 거부가 된 제리 양(중국명 楊致遠)을 비롯해 돤샤오레이(段曉雷) 리광이(李廣益) 천피훙(陳丕宏) 등 ‘실리콘 밸리의 총아들’은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등장했다.

실리콘 밸리의 린스(林氏)연구공사 린제핑(林杰屛), 이화(益華)공사의 황옌쑹(黃炎松), 쉬뎬(旭電)공사의 천원슝(陳文雄), 왕다좡(王大壯) 천훙(陳宏) 판징중(潘精中) 순옌산(孫燕山) 왕시(王犀) 청젠중(成建中) 리안(李安) 등도 중국 젊은이의 유학붐을 부채질하고 있다.

영어학습과 유학열풍은 중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새로운 저력이 되고 있다.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