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지고나면 정당 지도부는 으레 후보를 잘못 내세운 탓으로 돌리려 한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선거 등의 경우는 ‘작은 선거’라며 짐짓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엊그제 있었던 경기 안성시장 재선거와 화성군수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뒤 보인 국민회의측의 첫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무리한 연합공천이 선거에 악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또 최근까지 여론조사에서 국민회의에 대한 국민지지율이 야당인 한나라당 지지율보다 앞서고 있는 만큼 이번 선거결과만으로 민심이 완전히 집권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작은 선거’가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무시할 것인가.
올해 치러진 13차례의 각종 재보선에서 공동여당은 5번, 한나라당은 7번, 무소속이 1번 당선됐다. 수치로만 보면 야당의 근소한 우세다. 그러나 지난달 서울시 6개구 구의원 8명을 뽑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회의가 내천한 후보가 모두 낙선한데 이어 이번 안성과 화성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연패(連敗)한 것은 민심이 급속히 집권여당을 떠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한데도 여권이 선거패배의 원인을 공천잘못 등을 앞세워 애써 좁게 해석하려든다면 위기는 그와 비례해 깊어질 것이다.
현정권의 위기는 본란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봄 ‘고관집 절도사건’에서부터 ‘옷로비’ ‘조폐공사 파업유도’ ‘언론장악 음모문건’ 등으로 이어진 잇따른 의혹사건에서 보여진 집권세력의 거짓과 술수, 봉합과 축소 조작, 오만과 편견의 면면들이 현정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크게 흔들리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이 당장 눈을 돌려야 할 것은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여권은 여전히 위기의 본질에 주목하기보다는 ‘정치기술적’으로 위기국면을 벗어나려 하는 것 같다. 이번 선거 패배후 당장 ‘2여(與)합당론’이 급부상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공동여당의 연합공천으로는 내년 총선이 위험하니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이 불가피하다는 것인데, 기실 두 정당의 합당 여부는 여권의 사정이어서 하라, 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동안 합당을 하니 안하니, 신당이 먼저네 합당이 먼저네 하는 과정에서 비쳐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정치의 모습이다. 정도(正道)의 투명한 정치보다는 ‘비민주적 밀실정치’가 실질적 힘을 발휘하는 한 진정한 국민의 신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권은 이번 ‘작은 선거’패배에서 그 본질적 의미를 읽지 못한다면 ‘큰 선거’의 승리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