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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세상 정다운 사람]서울 천호동 개업醫 6명

입력 | 1999-06-18 19:28:00


선행이나 이웃돕기를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내킬 때마다 실천하다 보면 점차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 천호2동 신라빌딩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6명의 개업의들은 바로 그런 방법으로 이웃돕기를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게….

18년째 이곳에서 이비인후과 의원을 하고 있는 김재호씨(53) 등은 한 건물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연고도 없는 사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해초부터 매달 60만원의 성금을 모아 동사무소를 통해 익명으로 인근의 불우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병원을 열고 터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 동네주민들 덕분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이 주민들로부터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이라며 한사코 내세우는 것을 꺼렸다.

이들이 이웃돕기에 나서게 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경제난이 닥치면서 당장 병원진료비 몇천원조차 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였다.

마침 동네 소식지를 통해 병원 근처 동네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박정주씨(41·신경정신과)는 우연한 자리에서 “우리동네 이웃부터 도와보자”는 말을 꺼냈다.

다른 의사들도 흔쾌히 그 취지에 동의를 했고 그후 이들은 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아 당장 생계가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이들이 베푸는 도움은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1년반이 넘도록 지속되면서 대상자 가정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5년전 허리를 다쳐 지체장애인이 된 황모씨(35)도 그중의 하나.

어려운 형편에 휠체어마저 구입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지난달 이들의 성금으로 작은 휠체어를 하나 마련할 수 있었다.

황씨는 “그분들 덕에 새 ‘다리’를 얻게 됐지만 누군지 알 수 없어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며 “대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고 고 말했다.

황씨처럼 그동안 이들 ‘숨은 후원자’에게 도움을 받은 가정은 모두 40여곳에 이른다.

‘평범한’ 이웃돕기가 매달 계속되면서 남을 돕는 행위 자체가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쑥스럽지도, 거창하게 생각되지도 않게 됐다. 그리고 ‘돕기’의 영역도 차츰 다양해져갔다.

실직으로 진료비조차 못내는 어려운 환자들에게 무료진료권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노숙자가 급증하던 지난해 여름에는 이들을 위한 무료진료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의 숨은 선행은 어느덧 인근 병원에도 알려져 동참을 원하는 의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남을 돕는다는 게 어렵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더군요. 작은 정성이나마 주변의 이웃들부터 도와나간다면 그게 바로 ‘함께 사는 세상’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