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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세상 정다운사람]남몰래 제자등록금낸 선생님

입력 | 1999-04-30 19:45:00


《동아일보는 코오롱그룹의 오운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정다운 세상 정다운 사람’이라는 미담(美談)기사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밝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발굴, 소개하고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시리즈는 오운문화재단의 동일사업 캐치프레이즈인 ‘살맛나는 세상’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한주일에 한차례씩 기사화할 이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제보 바랍니다. 동아일보:02―361―0271∼8, 오운문화재단:080―311―3233》

『선생님의 숨은 뜻, 깊이 새기렵니다.』

8월말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는 한 노교사가 20년이 넘도록 학기마다 어려운 학생들을 한명씩 골라 익명으로 등록금을 대신 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 I고 O모교사(61·한국지리).

올해로 교직생활 34년째인 O교사는 그동안 박봉을 쪼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어왔으나 동료 교사들은 물론 은혜를 입은 수십명의 제자들도 등록금을 내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같은 사연이 알려진 것은 최근 학교 축제를 준비하던 교사들이 매년 축제 때마다 얼마간의 후원금을 내 온 익명의 후원자가 바로 O교사였음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O교사는 이 사실을 전해듣고 찾아간 기자에게 “칭찬을 듣자고 한 일이 아니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도와준 제자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베풀어온 ‘사랑’을 소개하는 것이 O교사를 칭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참 모습’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수차례의 설득 끝에 소속 학교와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한다는 조건을 달아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화하는 것에 동의했다.

한 동료교사는 “선생님의 사연을 듣고나서 10여년 전 내가 빚보증을 잘못 서 곤경에 처했을 때 ‘해결하는데 보태라’며 슬그머니 4백만원을 건네주시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O교사는 그러나 정작 자신은 별명이 ‘단벌신사’일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30년이 넘도록 은평구 응암동의 낡은 주택에 살면서 누구나 타는 자가용 한대 없이 평생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이 학교 3학년 유정경(柳定京·18)군은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는 엄격하시지만 평소에는 자상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O교사는 요즘 퇴직을 앞두고 그동안 교직생활을 하며 틈틈이 써온 수필과 산행 기행문을 묶어 문집을 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퇴직 후에는 여생을 전국의 시골과 섬을 찾아다니며 그 곳 사람들의 삶을 글로 남기는 것이 그의 꿈.

그의 두 아들도 모두 교육자의 길을 선택해 큰 아들은 현재 고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사범대에 재학중이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