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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의 숨결전을 보고/이구열]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주의

입력 | 1999-02-06 20:08:00


현대적 거대 도시화 물결로 옛 건물들이 거의 다 사라져 간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시민의 입장에서 고맙게도 살아남은 동아일보사 광화문사옥은 말할 것도 없이 근현대 한국사의 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이 건물이 94년에 타계한 동아일보 발행인이자 폭넓은 문화예술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되었다가 다시 일민미술관으로 꾸며진 것은 97년의 일이다.

그 사이 각종 미술 전시가 이곳 1,2층 갤러리에서 이뤄졌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일민 선생의 5주기에 맞춰 3층의 일민콜렉션 상설 전시가 처음 공개되고 있다(1월27일∼2월28일).

이 일민콜렉션을 관람한 안목 혹은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특별히 욕심이 없었고 과시하려 하지 않았던 일민선생의 꾸밈없는 한국미술 애호심과 폭넓은 안식(眼識), 그리고 넉넉한 인품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대별해서 도자기(고려청자∼조선백자), 서화(조선시대∼근대), 각종 공예품(조선시대) 등으로 약 4백점의 총 소장품중에서 1백20여점이 1차로 상설전시된 것이다.

낱낱이 그 수집배경을 나로선 알 수 없으나, 이미 말했듯이 계획적 수집이 아니었음은 명백하고, 따라서 일민 선생의 풍부한 식견과 교양의 미술애호 숨결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78년에 일민선생이 ‘새로운 형상성’을 내걸고 신인작품공모시상의 동아미술제를 창설하며 그 성격 및 방향을 논의할 때 선생과 가까이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선생의 미술관심은 각별했고, 미술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어떤 자리에서였던가, “음악잡지를 내고 계신데 미술잡지도 하나 발행하시지요”라고 했더니, “그러고 싶은데 이 사람들(관계국장 지칭)이 한사코 안된대요”라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렇듯 일민선생은 동아일보사의 문화사업으로 음악 무용과 함께 미술도 중요시하려고 한 분이었다. 그런 이야기때면 선생은 사시(社是)의 문화주의를 앞세우곤 했다. 그러면서 여러 기회에 선생 개인에게 혹은 신문사에 기증됐거나 주위의 권고로 구입해 자연스럽게 소장하고 모아진 것이 일민콜렉션인 것이다.

그 속에는 명품급 도자기와 걸작 또는 역작 서화, 그밖에 한국 미술사 자료로 가치가 높은 각종 공예품들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

나의 관심대상인 근대미술품에서는 전통회화만이 전시됐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심전 안중식의 1910년대 작품 ‘노안도(蘆雁圖·갈대와 기러기 그림)’쌍폭, 의재 허백련이 32년에 그린 전형적 산수화 ‘연강첩장(烟江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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