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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신문]정책판단 잘못 여부 싸고 공방 치열

입력 | 1999-01-26 07:30:00


첫 증인신문이 이뤄진 25일 경제청문회에서는 97년 당시 한국은행의 외환위기 인지시점과 안일한 대응, 실패로 끝난 한국은행의 환율방어 등이 쟁점이었다.

▽외환위기 인지시점과 신속대응 소홀여부〓전철환(全哲煥)한은총재는 한은이 97년3월26일 IMF차입 등 비상대책강구 필요성을 담은 ‘최근 경제상황과 정책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를 재정경제원에 제출하는 등 일찌감치 외환위기의 조짐을 감지했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이경식(李經植)전한은총재는 “여러가지 정책이 나열돼 있었으며 이런 정책을 제대로 안쓰면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했다”고 말해 한은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전총재는 외환위기가 임박한 10월하순에도 환율일일변동폭 확대, 가용외환보유고 방출 등을 통해 외환시장의 혼란을 피하려 했을 뿐 IMF행에 대해서는 주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이전총재는 IMF행의 불가피성을 11월초에야 인정하고 초동대응을 소홀히 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IMF와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환율정책〓당시 환율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고환율정책을 고집한 것은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97년 경제상황에 맞지 않았다는 게 다수설이다.

그런데도 이전총재는 “외환보유고를 소진한 것은 잘못이지만 환율정책이 잘못됐다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며 환율정책의 착오는 끝내 시인하지 않았다.

환율이 ‘수출제품의 가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전총재는 “환율인상으로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을 보였여야 했다”는 의원들의 공세에 설득력있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IMF행 불가피성 인식 시점〓이날 증언을 종합해 볼 때 김전대통령은 11월10, 11일 이틀간 홍재형(洪在馨)전부총리와의 전화통화와 11월12일 윤진식(尹鎭植)전청와대비서관의 보고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1월14일 IMF행을 재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 김인호(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 등 정식보고라인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김전대통령의 국정능력을 극도로 저하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정규영 전한은국제부장에 따르면 강전부총리는 IMF행을 논의한 11월9일 청와대―재경원―한은 3자회동에서 “재임중에 창피해서 IMF로 어떻게 가느냐”며 막판까지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

이전총재 또한 11월12일 김전대통령으로부터 외환사정을 묻는 전화를 받기까지 스스로 김전대통령에게 아무런 직언도 하지 않았다. 김전경제수석도 윤전비서관으로부터 11월7일, 9일, 10일 등 수차례 IMF행을 건의받았으나 “다른 대안도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전부총리의 미심쩍은 태도〓강전부총리가 IMF행을 막판까지 거부한 이유가 단순히 창피하다는 이유뿐일까. 그가 실제로 어떤 태도를 견지했느냐 하는 것도 규명해야 할 대상이다.

당시 재경원의 한 사무관이 외환일지에서 “강전부총리가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를 위해 11월16일 외환시장이 마비되는 상황에서도 시장개입 중단을 지시했다”고 적어놓을 정도로 강전부총리가 국가부도를 앞둔 상황에서까지 환율불안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사용한 흔적이 짙다.

〈이원재기자〉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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