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지영,「봉순이 언니」출간계기 이문열과 첫 만나

입력 | 1999-01-18 19:59:00


소설가 이문열씨가 공지영씨를 만났다.‘사연 많은’ 두 사람의 만남은 문단의 호사가들에겐 사건이라면 사건.

재작년 봄 이씨는 그에게 뭐라고 했던가. 이혼을 ‘절반의 성공’ 쯤으로 치부하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치고 있다고 비아냥대지 않았던가. 더우기 이번 첫 만남은 최근 뜨고 있는 공씨의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를 북돋아주기 위한 자리였으니.

“한번 꼭 뵙고 싶었습니다. ‘봉순이 언니’는 동아일보에 연재될 때부터 틈틈이 읽었습니다. 많이 곰삭고 가라앉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요. 전통적인 삶에 대한 관조 같은 것도 엿보이고요.”

공지영씨는 이씨의 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수업을 한 세대. 이제 막 다섯살이 된 작가(‘봉순이 언니’의 짱아이기도 한)의 눈에 비치는 60∼70년대 고도성장기는 68학번인 이씨의 대학시절과 맞물린다.

지겨울 정도로 80년대에 집착해온 공씨. 그는 왜 불현듯 ‘봉순이 언니’를 찾아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을까.

“이선생님이 질겁해 하는 다른 ‘80년대 아이들’처럼 저도 노동운동을 했어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었지요. 봉순이 언니처럼 못배우고 못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비용’이 없었다면 과연 ‘대학생인 나’가 존재할 수 있었겠느냐는. 80년대 방황과 분노, 그 시원(始原)은 바로 봉순이 언니였어요.”

소설 속의 봉순이 언니는 ‘식순이’다. 가족이되 가족이 아닌 상태에서 한 지붕 아래 살았던 그 숱한 ‘봉순이 언니들’. 어린 나이에 벚꽃 핀 창경원에서 친척에 의해 버림받고, 집안의 귀금속이 없어지면 도둑 누명을 쓰고, 건달 총각과의 첫 사랑에 참혹하게 실패하고, 만삭의 몸으로 아이를 지우고, 뒤이어 만난 남편과도 사별하면서…,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그런 봉순이 언니를 소설 속의 ‘나’는 매몰차게 내친다. 아파트로 이사해 파출부를 쓰면서 ‘식모’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내치고, 30년이 지난뒤 전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를 또 내친다. 봉순이 언니의 설마 하면서도 희미한 확신과 놀라움과 언뜻 스치는 반가움의 눈빛까지를 잔인하게 내치고 만다.

“흔히 말하듯 이 작품에 무슨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건 아니예요. 뭔가 있다면 끝내 떨치지 못하는 죄책감 같은 게 응고돼 있겠지요. 작가로서 나는 과연 누구 편에 서야하는가, 내가 진짜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다 화두처럼, 60년대의 봉순이 언니와 맞닥뜨렸지요.”

이 대목에서 이씨는 ‘작가는 자기 자신에게 복무(服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죄의식이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그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레닌식으로 말하자면 작가는 프롤레타리아도 부르조아도 아닌 ‘주변 계급’입니다. 주변 계급은 소멸하고 결국 어느 한 쪽에 편입돼야 한다는 그의 선동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 어느 계급이든 너무 승해지면 역사의 광기를 부를 뿐이지요.”

하지만 정작 이씨 자신은 ‘주변’임을 내세우면서도 기꺼이 ‘오른편’에 머물러오지 않았던가. 그런 공씨의 반문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식의 지향점과는 별개로, 작품을 놓고 말한다면 ‘봉순이 언니’는 참으로 애틋한 소설이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60∼70년대 서울의 풍경을 정말 놀라운 기억력으로 촘촘히 복원해낸다.

여름이면 작고 귀여운 채송화가 피고 강아지풀이 자랐으며 조금만 나가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모가 심어진 좁은 논이 있었던 1963년의 서울. 오리가 있고 거머리가 많던 개울들. 모래내 역앞을 천천히 지나가던 마차와 마부들.무꽃이 피어 나비가 날던 개천둑. 신촌 로터리 분수를 장식하던 보라색 팬지꽃….

“이 소설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작가의 내밀한 부분이 바깥으로 많이 보풀어 올랐어요. 현재성과 구체성이 와닿는다고 할까요.” 이씨가 거든다.

내면 지향 내지는 후일담 문학이라는 평가가 그리도 싫었을까. 공지영씨는 실제 이 작품을 쓰면서 서사(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