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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시대 42]美기업인들의 상속

입력 | 1998-12-08 19:39:00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저 세상으로 돈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말이다. 카네기는 1919년 사망할 때까지 전재산(4억9천2백만달러)으로 3천개의 도서관을 설립했고 8천대의 오르간을 기증했다. 코넬대학과 각종 사회단체에도 아낌없이 기부했다. 자식에겐 단 한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가정용품 유통업체인 미국의 홈 디포사 공동창업자 케네스 랑곤은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부(富)는 거름과 같아서 쌓아두면 썩은 냄새를 풍기지만 뿌려주면 많은 것들을 자라나게 한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록펠러에 이어 역대 미국 2위의 부자였던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와 존스 홉킨스, 릴랜드 스탠퍼드, 이즈라 코넬 등 미국의 부호들은 세상을 떠나며 재산 대부분을 대학에 기부했다. 랑곤의 말처럼 그들의 유산은 대학을 통해 많은 것들을 자라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의 기업가들 사이에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 오늘날 미국의 번영뒤에는 자본가들의 건전한 상속관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5백84억달러(약 70조5천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해 세계 최고 부자로 꼽히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 회장. 하루에 3천만달러를 버는 그는 “딸에게 1천만달러를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는 개발도상국 어린이에게 백신을 공급하는 단체를 이달초 만들고 1억달러를 기부했다.

또 얼마전 세상을 떠난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코카콜라 전회장은 재산 대부분을 그가 사회 사업을 위해 설립한 고이주에타재단에 기부했다.

카네기의 말처럼 상속과 증여가 자식을 망치는 사례를 우리는 이따금 현실에서 본다. 서울 강남지역 수천억원대의 금싸라기 땅을 물려받았던 K씨. 젊은 나이에 필로폰 경마 등으로 재산을 날리고 패가망신했다. 성장일로를 달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기업들 뒤엔 재벌2세의 탈선 이야기로 얼룩져있는 경우도 많다.

독일의 잡지 슈피겔은 소득불평등 심화 등 상속이 가져다 주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점들을 심층적으로 분석, “상속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경제활력을 상실케 하는 폐단이 있다”고 지적했다.

혈연이 뿌리깊은 우리사회는 세계 어느나라보다 상속에 집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증권거래소가 10월초를 기준으로 상장법인 5% 이상 주주의 특수관계인중 20세 미만 미성년자 2백53명이 모두 4백32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그런 사례. 심지어 생후 14개월된 유아가 3억원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상속세율도 미국 일본 독일 대만보다 낮은 편이다. 미국은 상속규모가 3백만달러(약 39억원)를 넘으면 55%의 세금을 부과한다. 독일의 경우 최고세율이 무려 75%, 일본은 70%, 대만은 60%.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50억원 이상을 상속받는 경우만 최고세율(45%)을 적용받았으나 내년부터는 30억원 이상이면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처럼 과세를 강화해도 변칙 편법 상속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세금회피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는 수법은 비상장 주식을 상장직전에 증여하거나 상장주식의 주가가 낮을 때 증여하는 것.

모 재벌의 아들은 94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60억8천만원을 증여받아 이중 증여세를 제외한 46억8천만원으로 재테크에 나섰다.

상장직전의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매입해 상장직후 되팔고 이 돈으로 다시 재테크에 나서는 방법으로 최소한 5백억원 이상의 재산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납부한 증여세는 14억원. 국세청측은 “당시 규정상 그만큼의 세금을 매길 수밖에 없었으며 탈세는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재벌들이 편법 증여를 하는데 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에서 이런 재테크를 한다면 줄잡아 1백억원이 넘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상속세를 피하려는 재산가가 있는가하면 건전한 상속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 있다.

지난 71년 타계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씨의 유언은 아직까지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떠나면서 그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 제대로 공부를 시켰으니 너희들이 자립해서 살아라. 학교에 다니는 손녀의 학비를 위해 주식배당금중 1만달러만 물려주겠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