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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가전략 학술회의 下]

입력 | 1998-12-07 19:56:00


5일 끝난 한국정치학회(회장 백영철·白榮哲)의 21세기 국가전략에 관한 학술회의에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발제 논문을 읽고 의례적인 칭찬성 코멘트가 몇마디 오가기 일쑤였던 다른 학술회의들과 달랐다. 열띤 분위기는 ‘전략’ 없이는 21세기를 앞두고 산적한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가의 목표는 세종연구소 한배호(韓培浩)소장이 기조발제를 통해 간명하게 정리했다. 한소장은 21세기의 우리의 목표로 △생존 △번영 △평화통일을 들었다. 전략이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최소비용으로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해 나가는 것이라면 목표의 제시로 논의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었다.

제1회의(정치경제 발전 전략)에서는 김대중(金大中)정부의 개혁에 대한 서울대 정운찬(鄭雲燦)교수의 비판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의 개혁상황을 ‘논의만 무성하지 이뤄진 것은 별로 없는’상황으로 규정한 정교수는 특히 지금이 재벌개혁의 적기이므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강대의 유석진(柳錫津)교수는 정부의 국정이념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이 쉽게 구축되는 것은 아니나 위기상황으로 이른바 ‘대내적 자율성’이 커진만큼 지금이 개혁의 적기임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제2회의(정치발전 전략)에서는 동국대 황태연(黃台淵)교수와 서강대 손호철(孫浩哲)교수의 접전이 돋보였다.

손교수가 주제발표를 통해 김대중정부의 성격을 ‘종속적 신자유주의―제한적 민주주의’로 규정하자 황교수가 즉각 반박하고 나선 것.황교수는 손교수의 주장이 “후진국들이 치열하게 선진국의 투자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는 현 생산조건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오류”라고 맹박하고 ‘DJ노믹스’는 ‘민주적 시장주의’라고 옹호했다.

정당개혁 부문에서 명지대 정진민(鄭鎭民)교수는 유권자들이 후보선정에 직접 참여하는 예비선거제와 정당의 경량화(輕量化)를 개혁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세종연구소의 박기덕(朴基德)박사는 “예비선거를 하게 되면 오히려 고비용 정치가 돼 정당의 경량화를 막는다”며 상호모순 가능성을 지적했다.

제3회의(행정개혁)에서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대해 몇가지 이견을 제시한 동아대 박우순(朴雨淳)교수의 주제발표가 압권이었다.

박교수는 정부역할에 대한 통념적 논리는 ‘정부역할을 줄이면 인간화(시민화)도 이루고 관료제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나 한국적 현실에서 더 중요한 것은 관료제의 축소가 아니라 그 질을 높이는 것(관료제화의 수준 향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혼란이 자주 야기되는 것은 ‘관료주의’와 ‘관료제’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제4회의(대북전략)에서는 세종연구소 백학순(白鶴淳·북한정치)박사의 주제발표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다.

백박사는 10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 이후 북한의 리더십을 국가목표의 설정이 지도부내의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되는 ‘비통합적 리더십’으로 규정하고 이같은 ‘비통합적 리더십’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려는 우리의 대북정책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김재홍(金在洪)논설위원은 ‘비통합적 리더십’론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김위원은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일 뿐만 아니라 북한 헌법이 ‘공화국은 노동당 영도하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남전략이건 경협이건 모두 김정일이 주관하고 있다(통합적 리더십)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위원은 특히 북한정권과 인민을 동일한 ‘햇볕정책’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햇볕정책은 헐벗고 굶주린 북한인민의 인권문제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혁·한기흥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