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IMF극복 수기대상 『어두운 삶의 터널에도 행복은…』

입력 | 1998-11-10 19:28:00


아버지는 깊은 밤이면 비명을 지른다. 식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술취해 늦게 들어와서 또 악몽인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가위눌린 모양이다. IMF 한 해가 그렇게 가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그만 사업체가 깨진 뒤 칼국수 장사에 나섰다. 밤이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약국 보조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침이면 대학생 딸인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준다.

점심시간에 혼자 도시락을 펼치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친구와 어울리지도 못하는 거냐”고. 대꾸는 안했지만 슬펐다. 귀가해 어머니에게 따졌다. “그까짓 점심값 때문에 친구들한테 따돌림 당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느냐”고 투정했다.

엄마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대신 생활비를 번다고 나섰지만 너무 힘들구나”라며 울음을 삼키는 엄마. 그러면서 구겨진 오천원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몇장을 내민다. 칼국수 몇그릇을 팔고 몇시간씩 서서 약국 허드렛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우리 모녀는 부둥켜안고 울어버렸다.

최근 한양대 안산캠퍼스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IMF극복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외국어문학부 1학년 백인정(白寅正·20·여·경기 고양시 일산구)씨가 쓴 수기의 줄거리다.

‘나의 작은 행복들’이라는 수기는 1등인 금상. 너나없이 고통과 충격뿐인 IMF난국에서 한 가족이 겪는 아픔을 잔잔하고 충실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녀의 집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다. 19년간 일구어온 중견 간판 제작업체 사장이던 아버지(47)의 사업도 잘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난해말 부도를 내고 말았다.

올해 그녀에게 대학생활의 낭만은 말뿐이었다. 두 학기 내내 등록금 분할납부 신청을 해야 했다.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약국에서 늦게 돌아오는 어머니 대신 가족들의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

그 혹독한 일년을 보내며 이제 ‘작은 행복’을 발견한다. 어두운 ‘IMF동굴’안에서 견디며 지나쳐 버리기 쉬운 삶의 구석구석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집안이 어렵기 때문에 상쾌한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할 수 있다. 지하철 의자에 기대어 가방을 책상삼아 책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광경에서 인생공부를 즐길 수 있다. 자리를 양보하는 아저씨, 큰소리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