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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빴던 여야협상]회담 1시간전 극적 타결

입력 | 1998-11-10 19:28:00


여야 영수회담을 위한 사전준비협상은 회담을 불과 한시간 가량 남겨둔 10일 오전11시경 극적으로 타결됐다. 회담 당일날 성사가 결정된 여야 영수회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0일〓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총무는 오전9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나 최종 담판에 들어갔다.

한총무는 미리 준비한 5개항 합의문 2장을 품속에서 꺼내 박총무에게 “한나라당측이 원하는 대로 가필을 하라”고 제의했다. 박총무는 협상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판문점 사건’ ‘보복 편파사정’ ‘고문 감청’ 등에 관한 추가3개 요구사항을 하나로 뭉뚱그려 6항으로 삽입하면서 합의문이 아닌 발표문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오전10시50분경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박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6항의 내용에 ‘고문’과 ‘우려’라는 단어를 반드시 포함시키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한총무는 “하나를 들어주면 또 하나를 요구하니…. 차라리 그만두자”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이에 당황한 박총무는 다시 이총재와 통화한 후 ‘고문’은 빼고 ‘우려’만 포함시키기로 최종합의했다.

▼9일〓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의 노력으로 협상타결 직전까지 갔다. 이들은 점심과 저녁을 함께하며 대략적인 합의문을 만들어냈다. 내용은 ‘경제청문회는 12월8일 이내 실시하고 한나라당측이 요구한 추가3개항 중 하나를 발표문에 포함시킨다’는 것.

그러나 이총재가 이를 거부해 “3개항은 반드시 합의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강경입장으로 회귀했다.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박총무가 한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3개항을 하나로 뭉뚱그리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8일〓양당 총무는 두차례의 비공개 접촉과 한밤 전화접촉 등 세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다. 국민회의는 경제청문회 개최시기를 못박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절대 불가’입장 속에 추가 3개항을 제시했다.

이들은 결국 밤12시쯤 “청문회 시기를 못박지 않는 회담은 의미가 없다”(한총무) “총무선에서 더이상 할 일은 없다”(박총무)는 말로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7일〓여야가 처음으로 회담개최에 합의했다. 국민회의 정총장, 한나라당 신총장은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막후협상을 벌여 대략적인 쟁점조율에 성공해 ‘9일 오찬회동’으로 의견을 모았다.

〈문철·윤영찬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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