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2일 열린 제4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5대 재벌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지금까지 재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12월말까지 기업구조조정을 완전히 끝낼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재벌에 대한 특혜시비를 우려해 재계가 강력하게 요구한 구조조정 특별법 제정을 수용치 않는 대신 재계의 자율 노력에 상응하는 조치로 재계의 요구사항 중 상당부분을 개별법에 반영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존의 특별법 요구에서 한발 물러서 정부가 성의있게 검토하고 추진한다면 굳이 법 형식에서는 구애받지 않겠다고 정부입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정부의 재벌 몰아붙이기〓정부는 재벌그룹유지의 중심축인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의 고리를 끊기위해 당초 30대 그룹이 2000년 3월말까지 상호지보를 완전 해소토록 했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5대재벌에 대해서는 금년말까지 서로 다른 업종간의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 해소수준도 ‘최대한 완전히 해소할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이 삼성자동차에 상호지급보증해준 것을 완전히 없애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벌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재벌 계열의 금융기관이 빚많은 계열사에 대한 지원이 어렵게 되어 채무가 과다한 중복 과잉투자업종은 자연히 정리될 수밖에 없다.
계열사간 상호지보 가운데 서로 다른 업종간의 상호지보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에서 5대 재벌에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
이때문에 재계에선 최근 금감위가 ‘재벌해체’의 1단계로 제시한 수직계열화 추진과 재벌그룹을 3,4개의 주력업종으로 재편하기 위한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또 이날 당초 재계가 약속한 외자유치계획 2백90억달러에 비해 현재 실적은 46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부채비율 축소를 위해 우량기업도 적극적으로 팔아치울 것을 요구했다.
▼재벌의 숨통 틔워주기〓재벌이 그동안 금융기관 출자전환시 우려했던 경영권 박탈에 대해 정부는 일단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채권금융기관과 기업이 협의해 잘 해나가고 있는데 굳이 채권은행이 기존의 부채를 출자전환해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KDI의 강영재(姜泳在)연구위원은 “정부는 손실부담원칙에 어긋나고 기존 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서는 곤란하다”고 밝혀 형평성 시비도 적지않을 전망이다.
또 상호지보 해소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그 대안으로 △금융기관의 출자전환 유도 △신규 담보제출 등의 방법이 있다고 밝혀 금융기관을 통한 대규모의 출자전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부실기업에 대한 지급보증 해소를 일시적으로 유예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채권금융기관과 협의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정부는 특별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각 부처가 개별법을 검토해 23일 일괄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합병비율 산정방법 개선 △주식매수권청구권 제도 개선 △세법의 추가 개정 등 일부 걸림돌은 해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부채비율감축일정과 관련해 이날 기대되었던 정부의 유연한 방침 표명은 없었으며 고용승계의무 유예에 대해서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해 재벌의 계속되는 지원요구에 쐐기를 박았다.
〈박현진·정재균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