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던 5대 기업간의 빅딜이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끝에 7개 업종에 대한 사업구조조정이라는 미완성 작품에 합의했다. 국가경쟁력에 걸림돌이 되어온 과잉 중복투자 업종에 대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은 한국 기업풍토에서 볼 때 하나의 큰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타난 빅딜의 결과를 보면 어느 대기업도 완승이나 완패가 아닌 무승부로 결말이 난 느낌이다. 오늘날의 냉혹한 국제경제 환경은 무승부 게임을 허락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 앞에는 제2의 빅딜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주업종은 거의가 중복되어 있다. 그것은 고도경제 성장시기에 선발기업이 어렵게 성공한 업종에 후발기업이 편승하여 너도나도 참여하게 된 결과다. 대기업간에 업종이 중복되다 보니 대기업간에는 협력이나 선의의 경쟁보다는 상호 알력과 불협화음이 더 심했다. 국가적으로 볼 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모른다.
세계시장의 개방화에 따른 우리 기업간의 동종 업종 경쟁은 이제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개방된 국제사회에서는 국내 독과점의 개념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구조조정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시급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빅딜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대기업 그룹 총수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실질적 지배자인 총수들이 빅딜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의 실정을 감안할 때 총수의 이해없는 대리인의 협상으로는 완벽한 구조조정을 이룰 수가 없다.
둘째, 대기업간의 빅딜이 이뤄지기 전에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그런 후 금융기관의 주도하에 빅딜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물론 시간이 촉박해 금융산업 구조조정과 대기업 빅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점은 인정되지만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므로 이 일은 시간보다는 완벽한 구조조정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
셋째, 빅딜을 통해 업체간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법보다는 대기업별 주력업종을 위주로 통폐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경쟁기업간의 편의적 합작기업 형성은 한국 기업문화 풍토로 보아 책임경영이 어렵고 조직적인 불협화음의 발생으로 인해 기업이 부실해지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빅딜의 성공여부는 빅딜후 형성된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어느 정도 가질 것인가에 달려있다. 국제경쟁력을 위한 청사진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정부의 지원정책이나 금융기관의 금융지원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지원책에는 해당 기업들의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빅딜은 이제 대기업간의 총론에만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부적인 합의, 즉 각론을 기업 스스로가 시급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급하다 하여 정부나 정치권이 정치논리에 의하여 개입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하여 국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고 이 국가경쟁력은 대기업의 구조조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조직 공기업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않는 인위적 빅딜은 하지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기업환경과 여건은 지금과 다르지만 과거 우리 정부가 기업의 통폐합이라는 산업정책에 실패하여 많은 후유증과 비용을 치렀음을 우리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정부의 산업합리화 정책은 거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인센티브에 의한 유인정책을 통해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선 사업구조조정은 기존 시설 등을 단순히 집합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충분히 확보하여 경쟁력있는 모습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빅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기업 스스로가 오늘날의 경제위기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살신성인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명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