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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시대 막오른다 下]난제 수두룩…불안한 미래

입력 | 1998-05-02 20:42:00


유럽통화통합은 ‘복음’과 ‘재앙’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표정도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낙관적으로만 볼 경우 유럽에 새 지평을 열어주는 역사적 격변이지만 회원국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고질적인 ‘제 몫 챙기기’가 만연할 경우 경제와 정치의 통합은 물건너가고 갈등이 증폭할 가능성도 있다.내년 이후 유러화를 쓰는 한 회원국에서 TV를 구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11개 회원국 어느 나라에서든 각기 다른 상표의 TV값을 간단히 비교할 수 있다. 상품값이 자국 화폐뿐만 아니라 유러화로도 표기되기 때문이다. 제품별 가격경쟁력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기업들의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특히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기업도산 및 합병 도미노로 기업경쟁력이 강화된다.

유러화체제 출범에 참여하는 프랑스 등 11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97년 현재 미국(7.8조달러)보다 작지만 영국 등 나머지 4개 회원국을 합칠 경우 8.1조달러로 미국을 앞선다. 유럽연합(EU)은 교역 규모에서도 미국 일본을 능가한다.

△상품 서비스 인력 자본의 단일시장 실현 △투자 장벽의 철폐 △외환거래비용의 절약 △소비자 복지증대 등의 긍정적 효과를 바탕으로 한 낙관론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적잖은 난제가 가로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업률 20%로 유럽국가 중 가장 심각한 스페인을 살펴보자.

화폐통합 이후 유러화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쥐게 돼 회원국은 독자적으로 화폐발행과 금리결정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스페인은 정부재정을 풀어 실업자를 줄이는 등의 정책을 펼 수 없다.실업자에게 세금혜택을 주려 해도 회원국간 조세를 일치시켜 나간다는 목표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스페인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수단은 임금을 낮추는 것이지만 이 경우 근로자들의 반발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갈등의 증폭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같은 얽매임에 반발해 독립적 통화 재정정책을 되찾으려 할 경우 유러화체제는 깨지고 유럽통합의 이상은 현실의 벽에 부닥쳐 부서질 수 있다.

실업사태 등이 계속 악화할 때 각국이 ‘소리(小利)’를 버리고 대의(大義)’에 얼마나 협조해줄 수 있을지 누구도 자신하기 어렵다.

유러화가 일단 안정기반을 굳히면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장이 예측한 대로 세계외환보유고 중 5천억∼1조달러가 유러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달러와 유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역할을 균형 있게 분담하게 되지만 달러화와의 싸움은 여전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러화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프랑스 경제학자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위의 전망처럼 기축통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어쨌든 유럽단일통화는 출발선을 떠났다. 이제 유러화의 안정적 정착 여부는 경기동향과 함께 각국 정부가 어떻게 상호 협력을 유지해 나가면서 자국의 회의론자와 반대론자를 설득하고 압력을 극복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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