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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번식 오랑우탄,사육사 정성에 『무럭무럭』

입력 | 1998-03-09 19:49:00


“어미 젖먹고 큰 새끼 못지않게 잘 키우고 싶습니다.”

생후 3개월째 접어든 새끼 오랑우탄 ‘보배’를 품에 안고 우유병을 물리고 있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육주임 이길웅(李吉雄·56)씨.

이씨는 제 또래보다 몸집이 작고 가뿐한 보배를 품을 때마다 “모유를 먹였어야 했는데…”하고 안타까워한다.

환갑을 눈앞에 둔 이씨가 보배의 ‘유모’ 노릇을 한 것은 2주전부터.

보배는 이름 그대로 동물원에서는 보배같은 존재. 국내에서 번식에 성공한 유일한 오랑우탄 새끼다. 어미 ‘패티’는 보배를 꽤 어렵게 얻었다. 오랑우탄으로서는 중년의 나이인 스물 여섯에 비슷한 연배의 남편과 하룻밤을 보낸 뒤 늦둥이 보배를 낳았다.

간신히 출산을 하긴 했지만 워낙 노산인 탓에 젖이 나오지 않았다. 빈 젖꼭지를 빨며 보채는 보배를 보다 못한 이씨가 자신의 사무실에 데려다 키우게 됐다.

보배는 1시간 반마다 ‘낑낑’ 소리를 내며 우유를 찾는다. 모유를 먹는 애들보다 우유먹는 횟수가 두배다.

덕분에 집에도 못들어가고 보배 곁에서 조각잠을 자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씨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분유 1통을 싹 비워낸 보배가 대견스럽기만 하다.

우유만으로는 쉽게 정상 체중이 될 것 같지 않아 월급을 쪼개 경동시장에서 한약까지 사다 먹였다. 덕분에 이씨 손가락 굵기만하던 보배의 팔뚝에 제법 통통하게 살이 붙었다. 체중은 아직 제 또래보다 1㎏이 모자란 1.5㎏. 보배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음악도 들려준다. 모유를 못먹고 자란 보배가 나중에 정서장애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돼서다. 보배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씨가 즐겨 듣는 트로트 메들리를 좋아하는 눈치다.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젖을 찾아 보챌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픈데요. 자식이 배고파 우는 것과 꼭 같아요.”

내년이 정년인 이씨는 보배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서 신나게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나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