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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한파 문학계전망]궁핍속 예술혼 『위기를 기회로』

입력 | 1997-12-15 08:01:00


전국민에게 「공황」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한파.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살림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항목이 「문화비」. 그렇지 않아도 출판계는 IMF한파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출판도매상 연쇄부도설」 등으로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일부 작가들과 평론가들은 『풍요속에 탄생했던 90년대 문학의 물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문학 내적인 변화가 작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예견한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보는 시각도 많다. 『90년대 거품경제의 소비풍조에 부응해 지나치게 경박해졌던 문학이 모처럼 자기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감각의 자극제로서의 「얄팍한」 문학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주는 「두터운」 문학들이 다시 읽히게 될 것』이라는 게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파악하는 문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문학사적 근거가 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들은 차르체제 붕괴기의 대혼란 속에서 탄생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39년작)도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의 절망이 빚어낸 수작이다.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유신체제의 언 땅을 비집고 솟아올랐다. 사회적 시련기에 탄생한 고전들의 특징은 당대사회의 어둠을 충실히 그려내면서도 선과 악, 이타심과 이기심, 용기와 비겁 등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고뇌를 투철하게 그려냈다는 것. 90년대 문학작품이 세계로부터 고립된 개인을 설정하고 자아찾기에 몰두함으로써 일종의 자폐증후마저 보이고 있다고 염려해왔던 문인들은 『사회적 위기를 겪으며 공동체의 고통과 나의 존재가 결코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80년대 문학의 집단편향, 90년대 문학의 개인편향이 지양된 새로운 기운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근 상황에 비추어 특히 주목되는 문인들은 중견작가들. 연륜으로나 사회적 경험의 축적 정도로 보아 「읽고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창작해낼 적임자들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새로움 세련됨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90년대 풍조 속에서 많은 중견작가들이 독자감각과의 시차를 느끼며 침묵하게 됐다. 그러나 삶의 지혜가 담긴 문학은 감각이 탁월한 사람보다는 생활체험이 두터운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중견작가들이 제몫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달러폭등」의 어려운 여건도 우수한 한국문학의 탄생을 촉구하고 있다. 무턱대고 번역계약을 했다가 국내판매가 부진하면 계약금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출판사의 경우 이미 계약한 해외출판사와 재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문학동네 강태형사장은 『구두계약만 해놓고 달러가 내리기를 기다리느라 연말까지 계약서 작성을 미뤄왔던 20여종의 번역서 때문에 고민』이라며 『구두계약시점에 비해 갑절의 계약금을 물게 돼 계약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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