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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경준/고객 볼모삼은 고려증권

입력 | 1997-12-09 20:25:00


『사흘째 찾아왔는데 몇 시간씩 기다려 받은 것은 대기표뿐입니다. 이제 와서 돈을 못내준다니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60대 명예퇴직자) 『자고 나면 수백만원씩 손해보는 판에 주식을 팔 수도, 계좌를 옮길 수도 없다니 누가 책임질 겁니까. 책임자를 가려 손해배상을 청구할 겁니다』(40대 여성 고객)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고려증권 본점 3층 영업부. 5일 부도를 낸 이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컴퓨터 단말기를 끄고 자리를 비운 상태. 성난 투자자들만 몇 남은 직원들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금융 사상 초유의 예금반환 거부라는 일대 「사건」은 직원들의 위기감에서 비롯했다. 제조업체와는 달리 제삼자 인수가 무산될 경우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 돼 월급은 물론 퇴직금 조차 한푼도 못받게 될 것이라는 불안. 노동조합도 없는 이 회사 직원들은 8일부터 증권감독원 등을 찾아다니며 『다른 회사가 인수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고객들의 재산은 100% 안전하게 조속히 돌려준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그러나 고려증권 인수 후보로 떠올랐던 주택은행이 『인수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히자 이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신분보장이 되지 않으면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것. 『현 상황은 고객들의 손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의 마비를 부를 수 있는 중대한 국면』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있는 간부들은 엉뚱한 소리만 한다. 한 간부는 『여직원들이 고객들의 성화에 못견디겠다고 아우성』이라며 고객에게 화살을 돌렸다. 회사를 믿고 일하다 하루 아침에 실직위기에 몰린 직원들의 심정은 이해 된다. 그러나 신뢰를 담보로 하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고객을 볼모로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흥정」을 벌인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고려증권 부도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고객들의 돈을 협상카드로 쓴다는 것은 비열하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정경준(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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