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인 남편은 머리숱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뒤통수쪽에 손톱만하게 빠지더니 어느 순간 5백원짜리 동전만한 빈터가 생겼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을 일부러 내려서 가려야 할 정도로 열군데도 넘게 공간이 생겼다. 앞머리를 무스로 바짝 올리고 다닐만큼 멋을 내던 남편이었기에 충격도 심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면 묻기도 전에 지레 나서서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변명하듯 말했다. 남편은 머리를 감거나 빗질을 할 때도 몹시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대야에 둥둥 뜨는 머리카락을 보고는 어지간히도 애태우는 모습이었다. 수건으로 닦으면 더 빠진다고 한겨울에도 선풍기 앞에서 조심스레 말렸다. 드디어 신문 잡지의 탈모증에 관한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하기 시작하더니 매주 한차례 병원에 들러 머리에 주사를 맞았다. 주사맞는 날이면 머리에 수십군데 피가 맺혀 아파하면서도 의사가 모르고 지나친 부분을 지적해가며 맞고 올 정도가 됐다. 아침 저녁으로 머리에 연고를 발라주는 일이 내 일과가 되어버렸다. 귀찮다고 하루라도 소홀히 할라치면 몹시도 서운해 했다. 먹는 약도 구했는데 밥은 굶어도 약은 빼먹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잠뿌리를 뽑아대던 남편이 운동부족 때문인 것 같다며 혼자서 등산을 하고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마침마다 30분은 거울을 보며 공터를 감추느라 애썼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날도 나를 깨워 머리를 봐달라고 했다. 아무리 옆머리를 끌어다 올려 빗고 젤로 고정시켜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만 완전히 가려졌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안심하고 출근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애태우던 남편의 머리카락이 언제부터인지 거짓말처럼 나기 시작했다. 속도도 얼마나 빠른지 잔디 올라오듯 쑥쑥 자라났다. 며칠 전에는 선풍기도 창고에 들여놓았다. 나도 약바르는 일에서 해방됐다. 오늘 아침엔 무스로 앞머리를 바짝 세운 남편이 20대 청년처럼 멋있어 보였다. 불경기로 회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편의 어깨가 펴진 것 같아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박현(서울 노원구 상계5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