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는 지난 몇십년 동안, 짧게는 현정부의 출범 이후 금융개혁은 우리 경제문제 해결의 핵심요소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그러다가 금년초 금융개혁위원회가 구성되고 나름대로 잘 정리된 금융개혁방안이 행정부에 제시되면서 혹시 이번에는 제대로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역시라는게 다시한번 증명되는 비극의 현장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 것인가. ▼ 땅에 떨어진 신뢰도 ▼ 첫째, 금융개혁법안 부결이 세계에 알려지면 외국의 투자가들과 채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시아의 금융위기속에서 한국의 산업효율성과 금융시장상태를 볼 때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쓰레기 처리장치 마련도 못하는 나라에 추가자금을 꾸어줄 수 없는 것은 확실하고 상환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채권이라도 더 이상 손해를 보기 전에 회수하려고 시도하지 않을까. 앞으로 몇달간 우리의 외환보유고로 계속되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고 7백억달러 이상의 외채권리금 상환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버틸 수 있을까. 외화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대폭적인 환율 평가절하, 주가 폭락과 금리상승은 자연스런 결과로 나타난다. 이어서 수입물가 상승, 1인당 국민총생산(GNP) 1만달러 이하 하락, 내수 위축과 많은 기업들의 채산성 및 재무구조 악화는 실물경제에서 나타날 변화다. 또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제결제은행(BIS)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외국정부로부터 외화를 차입하면 그들은 당연히 우리에게 재정긴축 금융긴축 산업구조 조정 등 경상수지적자 삭감정책과 금융시장의 대외개방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저성장과 실업증대로 이어질 것이다. 금융개혁으로 받게 될 일부 관련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크기에 우리 사회가 이런 길을 택해야 한단 말인가. 둘째, 긴급경제 재정명령을 발동해서라도 이번 국회가 부결한 금융개혁법안의 골격내용을 실천하는 방법이 남아있긴 하다. 어쩌면 국민의 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지금의 행정부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지금 정부의 능력과 의지의 범위를 넘는 꿈같은 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부실채권 정리와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이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현행법에 따라 부실채권 정리는 성업공사의 활동이지만 정리기금을 확대하거나 금융기관 채권을 해당기업에 출자전환해서 일부 실시할 수 있다. 다만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었으면 동원해야 할 자금규모가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의 경제안정 노력에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지는 셈이다. ▼ 개혁 의문점부터 풀어야 ▼ 또 금융기관의 인수와 합병도 안될 바 아니다. 최소한 국책은행은 정부 주도로 추진하면 되고 아주 형편없는 금융기관들은 강제합병시키면 된다. 그러나 재정지원이 없고 정리해고가 안되면 개별 금융기관들의 사정에 딱 맞는 상대방과 제일 적합한 짝짓기를 스스로 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금융기관들이 기업들에 대한 여신을 분별없이 하는 걸 막기 위해선 금융기관감독기구 협의체를 구성해서 운영하면 안될 것도 없다. 다만 겸업화 추세에 따라 일반금융기관들이 받게 될 중복감사는 왜 감수해야 하며 비슷한 지원부서를 왜 모든 금융감독기구가 중복 보유하면서 그 비용을 가뜩이나 어려운 사정의 금융기관들에 부담시켜야 하는가 등등의 의문점은 남는다. 머리가 나쁘거나 행동이 둔하면 돈으로 때우게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금융개혁의 진도가 늦어진 만큼 모두들 더 정성을 들여 생산하고 저축하며 국제적 협조체제 구축에 힘써야 그나마 국력이 보충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