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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성공기업/서부산업]『포기는 없다』 한우물 파기

입력 | 1997-11-06 19:41:00


『부도가 터지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몇년째 하루하루 속을 태워온 탓인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오히려 긴장이 풀리더군요』 서부산업㈜의 윤만희(尹滿熙·54)회장. 개인용 어학실습기 「닥터 위콤」에 돈을 쏟아부었다가 회사가 망할 위기에 몰리자 죽을 작정으로 수인선(水仁線) 도로를 거꾸로 달리기도 했던 그다. 이 때문인지 회사가 좌초했던 11년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년동안 월급 구경을 못하면서도 나를 믿고 따라준 1백여명의 직원들을 보면서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곧바로 간단한 세간살이를 집어들고 식구들과 함께 공장으로 거처를 옮겼죠』 윤회장의 1차 목표는 법정관리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사회적 파급도 크지 않은 30억원의 빚을 진 중소업체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법률사무소 사무장을 지낸 인연으로 유명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가 난색이었다. 법정관리 인지대라도 아끼라는 충고가 돌아왔을 뿐. 직접 신청서를 꾸며 담당판사와 부딪쳤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은 살려주셔야지요』라며 매달렸다. 『망한 중소기업들이 다 몰려올 것』이라며 점잖게 접수를 거절했던 판사는 이튿날엔 법원 직원을 시켜 몰아냈다. 다음날 또 찾아갔다. 판사는 그제서야 접수를 허락했다. 며칠 뒤 초라한 공장으로 실사를 나온 법원 조사단은 군말없이 재산보전처분을 내려줬다. 『아무 것도 믿을 게 없지만 경영자의 열의를 믿어보겠다』는 설명이었다. 경영을 윤회장에게 그대로 맡기는 「특혜」까지 주어졌다. 76년 서부산업을 세운 윤회장은 81년부터 4년간 한해 매출액의 두배가 넘는 17억원을 「닥터위콤」 프로그램 개발에 쏟아부었다. 닥터위콤은 문장 자동반복기능과 순간 검색기능에다 1대1 대화기능까지 갖춘 회심의 어학실습기였지만 자본회수가 되지 않았다. 서부산업은 86년 끝내 부도의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이 어학실습기는 88올림픽을 계기로 어학학습 바람이 불면서 회사를 기사회생시켰다. 올림픽 통역안내원 교육은 물론 대학생 어학실습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고국에 왔던 교포 유학생들도 다투어 닥터위콤을 찾았다. 91년 전국우수발명전 대통령상, 독일 국제발명전 금상 등 상복도 터졌다. 94년부터 수출을 시작, 작년엔 2백만달러를 해외에서 벌었다. 작년 5월20일 법정관리가 예정보다 6년 앞서 풀렸을 땐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아 경사가 겹쳤다. 부도 당시 연간 8억원 매출에 6억∼7억원의 적자이던 회사가 작년엔 1백50억원 매출에 10억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종업원도 1백50여명으로 늘었다. 닥터위콤은 현재 중국의 3백개 학교, 미국의 2백개학교 등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선양(瀋陽)에 짓고 있는 공장이 내년중 가동되면 가격경쟁력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윤회장은 기대한다. 『오직 한 우물만 판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나라가 벤처기업 육성이다 뭐다 하며 떠들지만 정작 큰 「모험」을 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기업이 열악한 경영 여건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박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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