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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日,「평화협정 합의」해석 제각각…앞날 불투명

입력 | 1997-11-03 19:32:00


2일 끝난 일본과 러시아의 비공식정상회담에서 2000년까지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북방 4개 섬 영유권 문제 등 양국 관계가 진전될 움직임이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노력」을 둘러싸고 양측의 해석에 거리가 보이는 등 일러관계 앞날이 급속히 변하지는 않으리라는 평이다. 일본은 『이번 합의로 북방 4개섬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신국면을 열었다』며 크게 반기고 2000년까지는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일본의 해석이 너무 앞서간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겐다지 주가노프공산당당수는 3일 『평화조약 체결이 쿠릴열도(북방 4개섬을 지칭)의 일본 귀속을 뜻하는 것인지 해명하라』고 다그쳤다. 러시아언론들은 『그동안 러시아가 숱하게 보낸 연서에 일본이 답한데 대해 러시아도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이라면서도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얘기는 해볼 수 있는 사안」 정도로 평했다. 이러한 엇갈림은 지난 한세기동안의 양국 관계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른 양국은 1945년 소련이 북방 4개 섬을 점령함으로써 냉전이라는 시대 배경과 맞물려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다. 양국은 56년의 국교 회복에 이어 △냉전 종식 후인 91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93년 10월 북방 섬과 관련한 「도쿄선언」 등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다 이번에 평화조약 체결노력 합의를 이루었다. 지난해 북방 4개 섬에 대해 공동개발안을 내놓으면서 먼저 추파를 던진 것은 러시아였다. 이들 섬을 특별구역으로 삼고 일본 법인이나 개인에 적용하는 법률은 양국이 공동으로 정비하자는 것이 뼈대. 일본은 응답을 유보했다. 공동개발은 러시아 주권이 미치게 됨을 인정하는 셈이 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중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북방섬과 관련한 깊은 논의가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있다. 거리상 가까운 하보마이(齒舞)열도와 시코단(色丹) 등 2곳을 먼저 해결하고 나머지 2곳은 추후 논의한다는 2단계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러시아정부는 「북방영토 문제를 대립보다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4개 섬에 일본인들의 영주권을 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내 반대 여론도 드세다. 더욱이 시베리아 천연가스 개발 등 일러간 경제협력사업들이 성과를 거둬 러시아 정치권의 입장을 살려주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2000년까지의 평화조약 체결과 그에 따른 북방영토 문제 해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도쿄·모스크바〓윤상삼·반병희특파원〉 ▼ 주요 일러관계 연표 ▼ △1904년〓러일전쟁 발발 △1905년〓러일 포츠머스강화조약 체결 △1907, 1910, 1912, 1916년〓제 1, 2, 3, 4차 러일협약 체결 △45년8월〓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 대일 참전, 9월 북방 4개섬 점령 △51년9월〓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에 따라 일본은 북방 4개섬과 사할린을 포기 △56년10월〓일러 공동선언, 국교 회복 소련은 평화조약체결 후 하보마이(齒舞)열도와 시코탄(色丹)을 양도키로 함 △73년10월〓다나카―브레즈네프 공동성명, 양국간 「미해결 제문제(북방 4개섬 포함 확인)」를 해결함으로써 평화조약 체결키로 함 △91년4월〓고르바초프 방일때 공동성명, 영토문제 협의 대상에 4개섬을 명기(12월 소련 붕괴) △93년10월〓호소카와―옐친 도쿄선언, 영토문제를 「법과 정의에 기초해 해결한다」고 천명 △97년7월〓하시모토 대러 신3원칙(신뢰 상호이익 장기적 관점) 발표, 광범위한 경제지원과 함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영토문제 해결방식」 제시 △97년11월〓2000년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진력키로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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