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증권사 지점의 이모차장(38)은 6개월째 힘겨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다. 입사후 줄곧 본사 총무 인사부 등에서 근무해온 그는 올봄 실시된 인사에서 생판 낯선 부서인 지점 영업차장으로 발령받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대적 인력재배치의 일환』이라는 회사측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그에겐 「날벼락」.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각오한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월간 수신고목표 30억원.
동창과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듯」 청약을 받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큰 손」에 줄을 대기 위해 저녁이면 접대 술자리를 갖느라 그새 몸도 많이 망가졌다.
함께 영업직으로 옮겼던 한 동료는 끝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풍(風)에 걸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표를 내고 택시기사로 전직하거나 교직 시험을 준비중이라는 동료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그도 「꼬치장사나 할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는 『온실에서 「정글」로 내던져진 느낌』이라면서 『직장생활의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력재배치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겐 이처럼 「시한부 퇴직통보」나 다름없다.
K그룹의 정모차장(41)은 최근 신사업 부서로 옮겼다. 그러나 말만 신사업이지 투자계획 등 아무런 「그림」이 없는 상태라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해 할 뿐이다. 그는 『회사에서 나가달라고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93년 40대 이상 과장 부차장 1백30여명을 대거 영업직으로 일선 배치한 동부화재의 경우 자리바꿈 인력 대부분이 새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성공적인 구조조정이었다』는 회사측 평가와는 달리 업계에선 인력재배치의 「그늘」사례로 이야기한다.
반면 「능력 발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J그룹의 김모과장(34)은 최근 연구소 연구직에서 영업직으로 전진배치됐다. 처음엔 「그만둘까」하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어차피 영업을 할 바에야 본격적으로 하자」는 생각에 1종 운전면허까지 새로 따서 직접 타이탄트럭을 몰고 영업소 배달을 다닌다.
김과장은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영업을 통해 현장에서 직접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나중에 연구직에 복귀하면 지금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영이·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