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캘리포니아」 「그림자호텔」 「모리슨호텔」 「갈매기호텔」, 「고등어」 「연어」 「홍어」 「붕어」 「숭어」, 「오렌지」 「토마토」 「마요네즈」…. 경춘가도에 늘어선 호텔상호가 아니다. 어물전과 과일가게에 쌓인 물좋은 생선이나 과일이름도 아니다. 모두 최근 1,2년사이 등장한 소설의 제목. 「죽음보다 깊은 잠」(79년·박범신 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87년·이문열 작) 등의 관념적인 제목이 풍미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의 현상이다. 작가와 출판인들은 『10년전만해도 고등어나 토마토를 소설제목으로 내밀었다면 점잖지 못하다고 핀잔만 들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의 이름을 소설제목으로 붙이는 최근 경향은 「인스턴트시대」독자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출판인들은 『구체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일순간에 전달해야만 서점의 책 진열대 앞에 선 소비자들에게 선택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호텔〓잠잔다」 「오렌지〓벗겨 먹는다」 등 사물의 이름은 그 자체의 본질적인 성격때문에 소비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 96년 1백만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소설도 명사제목인 「아버지」였다. 책 판매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도 사물이름을 제목으로 삼는 현상을 부추긴다. 시인이자 출판인인 정은숙주간(열림원)은 『어떻게 하면 현란한 다른 상품광고에 밀리지 않고 소설책의 제목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가 출판인 공통의 고민』이라며 『길고 관념적인 제목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비소설분야에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 산문형 제목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이에 영향을 준다. 명사형제목은 수필이나 교양서가 아니라 바로 소설이라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문학출판계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후에는 산문형제목으로 크게 성공한 소설이 없다』며 『산문형제목을 지으면 소설이 아닌 것같은 인상을 주어 기피하게 된다』고 밝혔다. 왜 생선 과일 호텔등의 특정 제목들이 중복생산되는 것일까. 「살아있다」는 이미지를 던져주는 생선의 경우 편집자들 사이에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호텔」은 퇴폐적인 도회풍의 낭만과 폐쇄공간의 이미지가 중첩돼 현대성을 드러내는 상징어로 꼽힌다. 명사형 제목들은 이미지만 던져줄 뿐 책 내용과는 전혀 별개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생선제목의 최대 히트작인 「고등어」. 「고등어」에는 80년대 운동권의 후일담이 있을 뿐 고등어얘기가 없다. 정종목시인의 시 「생선」의 한 대목(「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에 착안해 작가가 제목을 떠올렸을 뿐이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