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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4인 탐구]여성관은 이렇습니다

입력 | 1997-08-26 19:49:00


▼ 李會昌대표 ▼ 이대표는 그 연배에는 드물게 남녀평등 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대법원은 지난 88년 여성 전화교환원의 정년(43세)규정이 「차별규정」이라며 퇴직한 金永姬(김영희)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당시 주심대법관이 이대표라는 사실은 여성계 노동운동계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 그는 여성인 李玲愛(이영애)판사를 재판연구관으로 뽑은 유일한 대법관으로도 유명하다. 李美庚(이미경)보좌역은 『비서실의 막내인 나에게도 대표님은 꼬박꼬박 존대말을 쓴다』고 소개했다. 이대표는 3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부인 韓仁玉(한인옥)씨에게도 「부부의 예의」를 깍듯이 지킨다. 河舜鳳(하순봉)비서실장은 『「찬바람」이 일던 그의 인상이 여성을 만나면 순식간에 풀어진다』며 「알부남(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론」을 편다. ▼ 金大中총재 ▼ 김총재의 일산자택 대문에는 김총재와 부인 이희호(이희호)여사의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또 자택 2층에도 이여사의 몫까지 두 개의 서재를 마련했다. 김총재는 여성들과 만날 때마다 『아내의 권리가 남편과 같고, 어머니의 권리가 아버지와 같고, 딸의 권리가 아들의 권리와 같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총재는 여성의 지위향상과 정치참여에 관심이 많고 이를 당의 정책에도 반영했다. 국민회의소속 14명의 전국구의원 중 3명이 여성이다. 또 『집권 후 내각에도 여성과 청년에게 4분의 1을 할애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89년 유림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국회에서 가족법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도 김총재였다. 하지만 김총재는 여성들의 지지율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여 간혹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 金鍾泌총재 ▼ 김총재의 여성관은 『아내가 무서워질 때가 돼야 비로소 세상을 제대로 안다』는 말 한마디로 압축된다. 여자가 남자를 「리모트 컨트롤」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여성관에는 다소 보수적이면서도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가 배어 있다. 김총재를 만나본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또 결혼기념일이나 부인 朴榮玉(박영옥)여사의 생일에는 꼭 편지와 선물로 부인을 감동시킨다. 나름의 남녀평등론도 실천하고 있다. 재산부부공유제의 주창자로 대부분의 재산은 박여사명의로 돼 있다. 그러나 정책차원에서는 여성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 자민련에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는 게 좋은 실례다. 다른 당이 일찌감치 공약했던 공직 여성할당제를 채택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 趙淳시장 ▼ 조시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로 통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자의 말을 들어 손해본 적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측근들은 조시장이 여성들의 능력을 매우 신뢰하고 있다고 전한다. 여성들은 뇌물이나 부정부패에 쉽게 물들지 않고 통상이나 홍보분야 등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한 측근은 조시장이 평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교육은 평등한데 고용은 불평등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실제 조시장은 시장 취임이후 몇가지 주목되는 정책을 실현했다. 처음으로 1급 여성정책보좌관을 뒀고 여성을 감사과장이나 비서관에 임명했다. 그는 또 서울시 여성공무원 임용할당제(20%)를 도입했다. 여성취업 기회를 늘리기 위해 98년까지 1천개의 유아원 신설을 추진했다. 〈최영훈·윤영찬·이철희·정용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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