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문예잡지인 「조선예술」은 지난 89년11월호에서 망명한 장승길 이집트대사의 부인 최해옥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 출연하던 시절의 심경을 기록한 일기를 소개했다. 「믿음과 사랑에 대한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 일기는 만수대예술단 조직 20돌과 「꽃파는 처녀」 1천회 공연을 기념하기 위한 특집기사였다. 그는 73년 4월19일자 일기에서 김정일의 추천에 의해 이 가극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고 경위를 밝혔다. 김정일이 『피바다 가극단에 있는 여성 가수가 혁명가극 「피바다」에 출연해 노래를 잘 불렀는데 그도 꽃분이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교시, 평양음악무용대 재학중 22세의 나이로 일약 주역으로 발탁됐다는 것. 그는 『연기경험도 배우체험도 없는 내가 노래를 잘 불렀으면 얼마나 잘 불렀으랴만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는 자그마한 싹도 소중히 헤아려 보시고 나에게 중요한 배역을 맡겨주셨으니 생각할수록 어깨는 무거워지고 가슴은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첫 공연에 출연했던 73년 5월8일자 일기에서도 그는 『겨우 보름을 연습하고 무대에 나섰으니 노래와 연기에 결함인들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자애로운 말씀으로 나에게 신심과 고무를 안겨 주시니…』라며 김정일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73년 9월27일자 일기에서 김정일로부터 직접 노동당증과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고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 마냥 이 세상 끝까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만을 믿고 따르며 받들어 모시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는 꽃분이 역을 다시 맡게 된 89년 1월10일자 일기에서도 『이제는 나이가 많아 젊은 배우들에게 주인공역을 넘겨 주고 대학의 교단에 가 있던 나를 찾으시어…』라며 김정일의 배려에 감격해 했다. 이어 그는 『40대, 50대 아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꽃분이와 함께 혁명의 꽃 씨앗을 뿌리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위해 모든 것을 다바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8년여 뒤 북한을 탈출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못꾸던 때의 얘기였다. 〈한기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