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一江 金澈(일강 김철·1886∼1934)선생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후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서 출생한 일강선생은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과를 졸업했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에 분개, 중국으로 건너가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산화한 인물. 선생은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 鮮于赫(선우혁) 徐丙浩(서병호) 등과 함께 서울로 잠입, 3.1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천도교 기탁금과 가산을 처분해 마련한 거금을 갖고 상해로 돌아가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임시정부에서는 교통차장 회계검사원장 군무부장 재무부장 국무원비서장 등을 지냈다. 일강선생은 특히 金九(김구)선생과 함께 「의용단」을 조직, 李奉昌(이봉창) 尹奉吉(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를 배후지원, 일군의 추적을 피해 항주로 갔다가 급성폐렴으로 48세때 운명했다. 정부는 62년 일강선생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으나 이후 별다른 기념사업은 벌이지 않았다. 최근 선생의 영산김씨 문중에서 모금운동과 함께 전남도와 함평군에 기념관 건립, 생가복원 등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기념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기념사업을 추진중인 金達根(김달근·83)옹은 『선생의 직계손이 없고 문중 역시 한미해 본격적인 재원을 마련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062―365―2240 〈광주〓김 권기자〉